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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800만 시대](2)서울 대졸취업, 정규직 50%·비정규직 16%

by 노안부장 posted Aug 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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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800만 시대](2)서울 대졸취업, 정규직 50%·비정규직 16%
입력: 2008년 07월 17일 18:51:24
 
ㆍ전국 대학 3곳 졸업생 전수조사·실태

‘대졸자는 세 종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취업준비생이다.’ 취업을 위해 몸부림치는 20대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다. 20대 대졸자의 주요한 사회진출 통로는 비정규직 취업이다. 대학 졸업 후 안정된 직장에 정규직으로 들어가던 1970~80년대 사회진출 방식은 요즘 20대에겐 ‘신화’나 다름없다.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이 17일 여름방학 특강을 들으려는 수강생들로 붐비고 있다. 알림판에는 전국 지방공무원 채용공고문이 가득 게시돼 있다. |박재찬기자

경향신문 취재팀은 20대의 취업난과 비정규직화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 소재 4년제 사립대 1곳과 지방사립대·국립대 각 1곳 등 3개 대학 특정학과 졸업자 전원의 고용형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지방대 졸업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울지역도 50% 수준에 그쳤다. 정규직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4년제 대졸자는 10명 중 5명 안팎인 셈이다.

■ 정규직을 향한 비정규직들의 몸부림

지방 소재 사립 ㄱ대학 무역학과 2007년 졸업생 39명 중 정규직 취업자는 17명. 전체 졸업생의 43% 수준이었다. 나머지 졸업생 가운데 10명은 미취업 상태였고, 9명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지방의 국립 ㄴ대학 이과계열 한 학과는 지난 2월 졸업생 36명 중 21명(58%)만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취업한 것은 12명으로 전체 졸업생의 33%에 그쳤다. 나머지 취업생 가운데 9명은 비정규직이었다. 이밖에 10여명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를 더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직장을 얻기 위해 ‘가방끈’을 늘리려는 것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대학원 졸업생들의 정규직 취업률이 높아 학부 졸업생들의 대학원 진학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 학과의 대학원 올해 졸업생 6명은 모두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서울 소재 사립 ㄷ대학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 대학 신문방송학과 97학번 38명 가운데 취업한 사람은 25명. 아직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도 8명이다. 3명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2명은 취업 여부가 파악되지 않았다. 졸업자 가운데 정규직 취업자는 50%인 19명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종사자 대부분은 현재의 직장을 잠시 머무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정규직 취업에 대한 기대심리가 이런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있다.

이들의 불만은 월급문제와 고용불안이다. 정규직과 똑같은 노동을 하면서 급여는 정규직의 70% 수준이기 때문이다. 언제 길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늘 긴장한 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팀이 만난 이들 대학 출신 비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의 표본’이었다. 3개 대학 졸업생들의 진로는 대졸 출신 비정규직의 파노라마 같았다.

ㄱ대 무역학과 2007년 졸업생 김현선씨(25·가명)는 경북의 한 지방도시에 있는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비정규직 강사다. 월~금요일에 매일 오후 5~9시 4시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 달에 50만원을 받는다. 김씨의 꿈은 정규직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대학 재학 때부터 줄곧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

그동안 세 차례 공무원 시험을 치렀지만 모두 떨어졌다. 김씨는 요즘도 매일 새벽부터 오후 5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한 뒤 출근한다. 학원강사를 선택한 것도 일을 하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현재의 직장은 정규직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부와 시험준비를 병행하느라 힘들지만 비정규직에 만족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매일 마음을 다잡고 있다.

김씨와 ㄱ대 동기인 송영선씨(24·가명)는 희망을 갖고 사는 경우다. 그는 대전시 소재 연구기관 총무부서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직원들의 해외출장 관련 업무를 돕는 것이 송씨의 주요 업무다. 일은 힘들지 않지만 월급날만 되면 힘이 빠진다. 정규직과 너무 차이가 나서다. “월급이 얼마냐”고 묻자 “절대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갱신하는 송씨는 현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게 꿈이다. 이 기관은 다행히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신분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송씨는 “급여가 적어 힘들지만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도 불안하고 임금도 낮은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아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며 “내가 다니는 곳처럼 다른 직장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씨의 학과 동기생 정소라씨(25·여)도 서울의 한 연구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담당업무는 인터넷 사이트 관리. 정씨의 꿈도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정씨는 대학 평균 학점이 4.0이고, 토익점수는 890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졸업을 앞두고 10여 차례 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2~3차례 작은 무역회사 등에 정규직으로 합격했지만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 그만뒀다.

정씨의 급여는 월 150만원. 부모님이 전세로 구해준 원룸에서 월급의 절반을 저축하며 산다. 근검절약이 몸에 뱄다. 송씨는 “지방대 졸업자가 제대로 된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껴왔다”며 “비정규직이라도 어렵게 직장을 잡았으니 여기서 승부를 걸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명문대 출신을 우대하는 대기업과,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공무원 직종을 빼면 정규직 취업 기회는 얻기가 정말 어렵다”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사람을 위해 정규직 문호를 넓혀주지 않으면 많은 젊은이들이 꿈도 희망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명 시중은행 창구 비정규직인 ‘텔러’ 윤은희씨(25)도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잡으며 살고 있다. 윤씨는 입사 후 1년이 지나면 부여되는 사내 정규직 전환 시험을 노리고 있다. 윤씨는 “만약 정규직 전환 시험에 실패한다면 무기계약전환 시험에라도 응시해 안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윤씨는 “창구직원을 뜻하는 ‘텔러’는 비정규직으로 뽑고, 이른바 ‘행원’은 정규직으로 따로 뽑는 것을 보고 마음이 쓰렸다”며 “같은 사무실에서 비정규직인 텔러와 정규직인 행원이 뒤섞여 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서러움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미래에 대한 불안감

ㄷ대학 신방과 97학번 황인철씨(27·가명·보험회사 영업담당)는 현재의 비정규직 생활에 만족하는 이례적인 경우다. 황씨는 고객들에게 재테크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짜주면서 보험상품을 판매한다. 기본급과 실적급을 합해 월 250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는 “내가 노력한 만큼 벌 수 있기 때문에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씨 역시 안정된 정규직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지금의 보험회사에서 정규직 관리자가 되는 것과 은행이나 증권 쪽 정규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황씨는 “나와 같은 계약직 영업사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수입이나 고용 등 모든 면에서 안정된 정규직을 동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분 전환’ 실낱 희망 붙잡고 차별 견뎌요

대졸 후 비정규직… 그들의 목소리

L대학 이과계열학과 2008년 졸업생 임정순씨(24·가명)는 모교에서 조교로 일한다. 연구와 강의는 뒷전이다. 교수와 교직원이 해야 할 온갖 잡무까지 도맡아 해야 한다. 과중한 업무에 비해 월급은 쥐꼬리만큼 받는다. 대학들은 졸업생 1~2명을 조교로 뽑은 뒤 취업통계에 ‘취업자’로 잡는다. 임씨도 최근 모교의 취업자 통계조사 문의를 받고 취업자라고 대답했다.

임씨는 당초 졸업을 앞두고 소규모 무역업체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합격했으나 바로 그만뒀다. 급여가 적은 데다 비전도 없어서다.

임씨는 공부를 더 할 생각으로 지난 3월부터 자신이 졸업한 학과의 조교로 왔다. 정작 공부와 연구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학과의 일이 너무 많아 차분하게 앉아서 공부할 형편이 못된다.

임씨는 월 130만원을 받는다. 다른 직장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월급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언짢아진다.

게다가 계약기간 1년짜리 조교는 학교에서 있으나마나한 존재다. 임씨는 “조교도 학교를 이끌어가는 주요 구성원인데 심부름꾼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교들의 급여를 현실화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원 졸업자의 정규직 취업률이 학부출신보다 높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ㄷ대학 출신 김제남씨(31·가명)는 모교의 사이버대학교 영상제작팀 계약직이다. 월급은 140만~150만원. 계약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김씨는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정규직을 얻지 못했다. 그는 “나이도 차고 해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해보려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며 “일단 사이버대학 교직원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대학 도서관이 17일 열띤 취업경쟁을 반영하듯 여름방학 기간임에도 취업준비생들로 가득하다. 도서관 관계자는 “취업준비생들로 인해 아침 일찍부터 빈자리를 찾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 남호진기자

ㄷ대학 출신 이지애씨(31·가명)는 졸업 후 모 지방방송국의 계약직 방송기자로 입사했었다.

입사 당시만 해도 계약기간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적어도 계약이 갱신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회사는 계약기간이 종료되자 이씨를 해고했다. 이씨는 현재 방송국 입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아예 정규직 취업을 단념한 이들도 있다. ㄷ대학 졸업생 이동열씨(35·가명)가 그런 사례다. 서른 넘어 대학을 졸업한 이씨는 영화판·방송판·광고판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다 취업시기를 놓쳤다.

유통회사 정규직으로 잠시 취직한 적도 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직장을 나왔다. 현재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다. 이씨의 월 수입은 100만~150만원. 이씨는 “앞으로도 (정규직으로)취업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20대 비정규직의 가장 큰 고통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김현선씨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지만 합격을 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남자친구를 사귀거나 결혼을 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처럼 데이트를 즐기고 싶지만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면서 그런 것을 생각할 만한 심리적인 여유는 물론 경제적인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황인철씨는 “비정규직으로 있다 보니 미래가 자꾸만 불안하게 느껴진다”며 “당장은 현재의 일에 매진할 생각이지만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불안’이 비정규직만의 화두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것 같은 정규직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국내 최대 증권사에서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으며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한진규씨(27·가명)는 “직장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10년이고 20년이고 이 곳에서 마음놓고 일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대기업에서 일을 하게 돼 기쁘기는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뭔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제약회사의 정규직 영업사원인 심상규씨(27·가명)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의 질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문제”라며 “정규직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평생 보장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심씨는 요즘 외국계 회사로의 전직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굳이 정규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체감하는 불안의 온도가 같을 수는 없다.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편입되기보다 당분간 무직 상태에 있더라도 정규직 일자리를 얻겠다는 젊은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하기 힘든 이유다.

신성철씨(28·가명)는 대학 졸업 후에도 매달 30만원의 용돈을 부모로부터 받고 있다. 공공기관 입사를 꿈꾸는 그는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도 없다”며 신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신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탈 때는 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더욱 나은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다”며 “안정된 공사나 공단에서 일하고 싶어 비정규직을 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마다하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제필씨(28·가명)는 얼마 전 한 무역회사에서 면접 시험을 본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정씨는 졸업을 앞두고 몇 차례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포기했다. 비정규직으로는 절대 갈 수 없다고 결심한 까닭이다. 그가 비정규직을 기피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정씨는 “무슨 일만 있으면 1차로 해고 대상이 되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려고 하면 바로 잘리는 여자친구의 회사 동료들을 보면서 ‘이것은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정제혁 장은교(사회부) 이호준(산업부) 배명재 김한태 윤희일 최인진 최승현기자(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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