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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풀린 금융, 명동 한복판에 고속도로

by 노안부장 posted Oct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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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풀린 금융, 명동 한복판에 고속도로
[새사연-오마이뉴스 공동기획 ③] 구제금융법 통과 이후 미국 경제와 한국
2008-10-14새사연 연구센터

망가진 미국 금융과 ‘금산분리 완화’ 발표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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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해법, 달러 무제한 공급이라는 초강수까지 등장

미국을 필두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가는 금융위기를 수습하고자, 선진 각국들이 각자 자국에 필요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에서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가 직접 기업어음(CP)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하는 동안, 영국과 아일랜드는 부실은행 국유화 방침을 내놓는가 하면 독일을 중심으로 국가가 예금자 예금보호를 전액 보장한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부도위기에 몰린 아이슬란드는 러시아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조용하기만 했던 국제통화기금(IMF)마저 나서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나 시점이 서로 어긋나면서 이들 대책의 효과는 반감되었고, 이미 금융위기는 개별 국가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금융위기는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연방정부의 통제를 넘어서, 개방된 금융 연쇄고리를 타고 전 세계로 급격히 전이되었고, 이제는 문자 그대로 지구적 범위의 해법을 요구하는 단계까지 왔다.

10월 8일, 오랜만에 주요 선진 7개국(G7) 중앙은행이 일제히 금리를 인하하는 ‘공조’를 취했지만 그 효과 역시 하루를 가지 못했다. 그러자 10월 10일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담, 11일 우리나라와 BRICs 등을 포함한 G20 재무장관 회담, 12일 유로존 15개국 정상회의를 잇달아 개최하고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책을 논의했다.

부실 자산 인수를 넘어 금융회사에 직접 자금투입을 하는 방안, 은행 간 자금거래에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방안 등의 강력한 국가 개입 대책이 쏟아져 나와,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가 사실상 국가자본주의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더니 13일 미국, 일본, 유럽, 영국, 스위스 등 5개 중앙은행이 “상업은행들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달러 무제한 공급 선언을 하기까지 이른다. 심장이 멎어버린 상태를 한시도 지연시킬 수 없어 일시적인 전기충격 요법을 사용해야 할 국면에 이른 것이다.

단지 교통경찰의 태만과 운전과실 때문에 금융대란이 발생했다?

그러나 전기충격 요법으로 이미 실물경제까지 전이된 세계 경제위기가 얼마나 회복될지는 여전히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자본시장 통합법과 함께 금융규제완화 논쟁의 초점이었던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미루고 미룬 끝에 13일 전격 발표하였다.

우리 금융정책의 수장인 금융위원회 전광우 위원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시작되어 전 세계 금융공황국면까지 치달은 최근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 바 있다.

“교통사고(금융위기)의 원인이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운전과실(경영자의 모럴헤저드)이나 잘못된 교통신호체계(감독시스템), 또는 과속을 막지 못한 교통경찰(감독기관)의 책임일 수도 있다” (<아시아투데이> 10월 10일)

금융정책 수장다운 대단히 적절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광우 위원장 발언의 취지는 ‘금융자본주의 그 자체나 규제 시스템이 문제라기보다는 감독소홀이나 금융회사의 과욕이 문제’일 가능성이 높으니, 우리나라는 향후에 ‘금융산업 혁신을 그대로 강행하고 규제완화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금융감독을 효율화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접촉사고도 아니고, 전 세계가 무제한 달러 공급을 해야 하는 ‘전 국가적 교통마비 사고’라고 표현해야 할 지금의 금융위기가 과연 교통경찰의 근무태만과 운전자의 과실 때문에 발생했다고 간주할 수 있을까. 미국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30년 동안 부실 위험성을 누적시켜 왔는지를 추적해 보면서 전광우 위원장 발언의 타당성을 가려보자.

전통 제조업 투자를 선호했던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 워렌 버핏은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에 지금의 금융위기가 있다고.

미국 금융 고속도로에는 신호등도, 보안관도 없었다

1980년 이후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던 금융시스템 엔진에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대량 살상무기’ 수준의 위험성이 있는 파생상품, ‘시한폭탄 결함’이 자라고 있었다. 또한 투자자와 기업의 자금 중개 수수료를 넘어서 자기자본의 몇 십 배의 차입(leverage)까지 동원해서라도 고수익을 좇으려는 ‘급가속 결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금융시스템에 내재한 근본 결함을 고치려 하거나 문제발생을 방지하려는 최소한의 어떤 사전적인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반대로 “파생상품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그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려는 사람들에게 넘길 수 있는 놀라운 수단”,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2003년)이라며 시장이 위험성을 자율적으로 정화시킬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또한 미국 정부는 금융회사들이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면서까지 고수익을 추구하도록 금융에 가해졌던 각종 규제를 오히려 풀어버렸고, 금융회사들은 그나마 남아있던 규제도 피해나갔다. 1929년 대공황의 교훈을 근간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엄격한 분리를 규정했던 은행법(Glass-Steagall Act)은 1999년 은행현대화법(Gramm-Leach-Bliley Act)으로 대체되면서, 금융지주회사라는 이름아래 사실상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장벽이 사라졌다.

이들 금융지주회사와 투자은행들은 연방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투자전문 자회사와 모기지 전문회사를 세워, 이제는 악명 높아진 서브프라임 대출을 남발했다. 특히 투자은행들은 상업은행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로부터 과다 차입 등에 대해 전혀 규제를 받지 않았고, 미국 증권선물거래소(SEC)로부터도 그 어떤 강제적이고 명시적인 규정도 받지 않아,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느슨하기 그지없는 규제 틀에서 마음껏 대규모 차입과 자기자본 투자를 강행했다.

더욱이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파생상품을 주업으로 하는 헤지펀드와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라고 하는 초고속 경주용차를 허용하여 이들이 금융고속도로를 폭주하도록 했다.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규제마저 없었고 최소한의 정보공개의무조차 없었다. 얼마나 위험한 상품에 투자를 하든, 얼마나 과도한 차입을 동원하든 규제는 없었다.

말하자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라고 하는 초고속 경주용차가 과속주행을 하고 신호위반을 일삼고 중앙선을 침범하는 극히 ‘위험한 주행’을 해도 그들만 다치고 만다면 보안관은 전혀 단속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가드레일만 들이박고 끝난 것이 아니라 대규모 인명 살상을 했으며 전체 교통을 마비시키고야 말았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시장이 자율적으로 통제하리라 믿었던 파생상품, 그리고 점점 더 풀려나가는 규제 속에서 위험도 높은 파생상품과 모기지 대출을 자유롭게 일삼았던 금융기관들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미국 금융 감독의 최종 보안관이라고 할 재무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월가 출신들이었고 시장주의 추종자들이다. 자신이 교통법규를 위반한 전력을 가진데다가, 위반을 저지른 운전자와 친분이 두터운 이들 보안관에게 감독을 더 잘하라고 한들 감독이 제대로 되겠는가.

신자유주의 금융 엔진의 과열과 폭발

그뿐이 아니다. 미국 금융상품의 불량 여부를 판단해왔던 기관이 바로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Fitch)인 3대 신용기관이다. 그런데 이들은 공적기관이 아니라 철저히 수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었다. 이들의 수익원은 바로 불량여부를 판단해야할 그 금융상품을 제조, 유통하는 투자은행들이다. 애당초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책임자들도 문제를 비켜가지 않는다. 이제 94년 역사의 메릴린치를 파산시켰다는 오명을 안게 된 전 CEO 스탠리 오네일의 경우, 부채담보부증권(CDO) 자산의 위험성을 경고한 임원들을 해고하면서까지 오로지 고수익을 추구했다.

도대체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미국 서민 가구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발생한 문제가, 어떻게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세계 경제를 흔들면서 첨단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규제 풀린 월가의 전통적 금융회사들과 규제 없는 신종 금융조직들이 주택 담보대출 채권을 모기지담보부증권(MBS)나 부채담보부증권(CDO)와 같은 파생상품과 접목시켜, 고위험을 안은 채 고수익을 무제한 추구하면서 위험을 내부에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적되는 위험성은 ‘시장이 스스로 치유’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월가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월가의 신념은 현실에서 여지없이 무너졌고 자유시장 금융시스템이라는 자동차 엔진은 과열로 폭발되었다. 이번 금융위기가 시장주의의 파산임을 고백한 파이낸셜 타임즈 마틴 울프는 결국 지난 3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3월 14일 금요일을 기억하라. 자유시장 자본주의(global free-market capitalism)의 꿈이 사망한 날이다. 30년 동안 우리는 시장 주도의 금융 시스템(market-driven financial system)을 추구해왔다. 베어스턴스를 구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미국 통화정책 책임 기관이자 시장자율의 선전가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제 월가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구조적인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을 미연에 방지하는 규제체계에도 결함이 있었으며 감독조차도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월가의 금융가들과 펀드매니저들은 수익에 대한 극단적인 과욕을 멈추지 않았음이 증명된 것이다.

‘규제’가 없다면 ‘구제’도 없어야 하지 않나

지금 섣불리 신자유주의 종언을 주장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이라는 엔진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규제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규제할 필요가 있는 곳에 규제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규제라는 것이 비용이 들지만 미리미리 규제했다면 이처럼 더 큰 국민의 혈세를 퍼붓는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것”(장하준 교수, <이코노믹리뷰> 10월 9일)이라는 주장은 그런 점에서 매우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장 자율규제의 신화를 철석같이 신봉했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조차도 “지금 세계의 금융시스템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정비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금융산업이 자율규제를 한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지금의 위기는 정부가 손을 놓고 아무 규제도 없이 방임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빚은 위기가 아니라 ‘금융 자본주의’가 빚은 위기이다. ‘규제 자본주의(regulated capitalism)’만이 해법”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규제를 받지 않거나 규제를 피해 그동안 승승장구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대신에, 저소득층에게 그만큼의 부채를 안겨주고 이들을 거리로 내몬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규제를 받지 않았던 만큼 구제도 스스로 하는 것이 사실 논리적으로 맞다.

브레이크 없는 미국 금융자본주의 앞길에 미국 정부가 알아서 고속도로를 깔아주고 신호등마저 없애주고 보안관도 철수시킨 상황에서 교통대란과 대규모 인명 살상이 났는데, 오히려 인명 피해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간 미국 시민들에게 돈을 걷어서 금융회사라는 자동차 수리비에 쓰겠다니 누가 찬성을 할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거액의 세금을 쏟아 부어 상황을 수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 최소한 수습 후 교통사고 책임 추궁과 재발방지를 위한 규제책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11월 4일 미국 대선이 치러지고 새 정부가 들어서도 당분간 금융혼란을 쉽게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지만, 당분간 계속될 금융회사 파산이 한계점에 이르고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 국면으로 돌입하면 각종 의회 청문회를 통해 제도적인 수습방안들이 모색될 것이다. 사실 우리 정부가 굳이 미국 모델을 따라 하려거든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뚫어준 고속도로, 무슨 차로 달리지 고민하는 행복한 삼성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0월 13일 미국발 금융위기로 몇 차례 미루어 왔던 금산분리 완화(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방안을, 전 세계가 금융파국을 막고자 비상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용감하게(?) 발표했다.

예고되었던 대로 금산분리 완화는 1) 의결권 있는 은행지분을 산업자본이 종전 4퍼센트에서 10퍼센트까지 소유하도록 확대하고, 2) 종전 10퍼센트에서 30퍼센트까지 산업자본이 출자한 사모펀드(PEF)도 은행소유를 가능하게 하며, 3) 해외에서 산업자본을 보유한 외국은행에게도 국내은행의 인수를 허용하고, 4) 금융투자(증권)지주회사는 증권자회사가 제조업체를 산하에 둘 수 있게 하며, 5) 보험지주회사도 자회사로 제조업체를 지배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 보너스로 재벌들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돕기 위해 각종 제한 규정마저 최장 7년을 유예하기로 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6) 일반지주회사도 금융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거들고 있다.

월가의 금융인들보다 더욱 확고한 규제완화, 시장 자율규제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삼성생명이나 삼성증권 등 금융회사를 안고 있는 삼성그룹은 이제 명동 한복판에 정부가 만들어 놓은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셈이다. 그것도 어떤 차를 타고 갈지 골라야 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공한 제조업 금융 자회사 허용을 선택하여 그룹사를 재편할지, 금융위원회가 제공한 금융투자(증권)지주회사로 갈지, 아니면 삼성생명을 주축으로 하는 보험지주회사를 세울지 고민하면서 삼성이 가장 편한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초보 운전자가, 신호등도 없는 곳에서 엔진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몰면?

결국 우리 정부는 여전히 끝을 모르고 확산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보면서도,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결함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된다. 규제 체계 역시 금융산업의 고속성장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신호등 정도로 여겨서 가급적 없애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 정부가 얻은 교훈은 경찰관을 잘 세워서 감독 잘하고 운전자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것 정도인 듯하다.

심지어 미국 금융위기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라는 표식을 내기 위해서, “금산분리의 모국인 미국의 경우에도 최근 금융위기에 따른 은행자본 확충을 위해 은행주식 보유규제를 종전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완화”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금융위원회 10월 13일 보도자료) 놀라운 해석이다. 지금 미국은 은행 부실로 인해 연방정부가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 어디서라도 자금을 동원하여 은행에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 극단적인 처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마치 자동차 사고로 망가진 차를 어쩔 수 없이 도색하고 있는 미국을 흉내 낸다면서, 우리는 방금 나온 신차인데도 자랑스럽게 새로 도색하는 것이 최신 유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할까.

우리 정부는 미국에서 이미 엔진 구조에 결함이 있다고 검증된 자동차를 수입하면서도, 인파로 뒤덮여 있는 명동 대로에 고속도로를 내려고 하고 있다. 신호등도 모두 없애고 오직 교통경찰만 세워놓겠다는 것이다. 신호등도 없이 초고속으로 질주할 미국산 금융시스템이 앞으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성장 동력임을 믿어달라고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산 금융시스템이 폭발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극히 조심해서 엔진을 과열시키지 않고 기술적으로 운전을 하면 엔진이 폭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굳세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의 금융시스템 전문가들로 구성된 월가도 엔진 과열과 폭발을 막을 수 없었다. 하다못해 이제 막 면허시험에 통과한 한국에게 이런 자동차를 주고 조심해서 운전하면 사고가 안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당하겠는가, 아니면 아예 문제가 있는 엔진 결함을 근본적으로 고친 후에 운전을 하는 것이 정당하겠는가.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의 은행들이 그나마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을 덜 받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이) 월가의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셈이다. 일본의 경우도 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후 금융기법을 체득하지 않고 후퇴적인 경영을 하면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다. 규제 때문에 ‘촌놈’ 행세를 한 것이 맞았다” (<이데일리>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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