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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아시아 사람들]경제위기 첫 희생양은 ‘이주노동자’ 

by 노안부장 posted Dec 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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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아시아 사람들]경제위기 첫 희생양은 ‘이주노동자’ 
입력: 2008년 12월 09일 17:49:59
 
ㆍ영세업체 폐업 속출… 산업연수생도 해고대부분 불법체류 “나가라면 나갈 수밖에”

지난 4일 오후 4시쯤 서울 가산동 디지털센터 내 한 전자부품 업체 공장.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건물 1층에 위치한 제조라인으로 들어서자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느 공장처럼 윙윙거리는 기계소리가 울렸다.

경제위기 한파 속에서도 공장은 가동되고 있었다. 다만 변화가 하나 있다. 최근 공장에서 일하던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사라졌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실물경제 침체가 시작되자 공장에서 이주노동자를 해고시킨 것이다.

셋톱박스 부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이 500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올해 계획대로라면 매출액이 700억원을 넘어야 한다. 중국에 공장 2곳이 있고 한국 공장 직원은 200명 정도로 견실한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이 공장도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금융 ‘쓰나미’를 피하지는 못했다. 이 업체는 올 하반기 수요가 줄어들면서 생산량이 급감했다. 내년 1분기 생산물량도 절반이 빠진 상태다.

회사는 결국 동남아 이주노동자 8명을 해고했다. 회사 관계자는 “일부를 지키려다 전체를 잃을 수도 있다. 내년 상반기에 더 어려워질 것에 대비해 유연성을 길러두자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들이 경제위기의 첫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불안정한 신분 때문이다. 한 노동자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대부분 불법체류자들이다보니 아무래도 나가라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도 속수무책이다. 또 다른 노동자는 “세계적인 경제위기고 너무 일감이 없다 보니 노조가 도와주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지난달 15개 지부 90여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경제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현황’을 파악한 결과, 일부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나 산업연수생을 해고하거나 자국으로 잠시 돌려보내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에서 카오디오를 생산하는 또 다른 업체는 산업연수생들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이 회사는 경제위기 여파로 내년 초반까지 생산물량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 관계자는 “11월에 산업연수생 5명과의 계약기간이 만료됐을 뿐”이라며 “12월 중순에 다시 돌아오면 계약을 연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직원은 그러나 “회사에서 ‘일이 다시 바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3월쯤에 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자꾸 말들이 나오니깐 회사 측에서 ‘금방 온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에 자동차 업체의 불황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여 산업연수생들이 다시 고용될지는 미지수다.

중소업체의 생산량 감소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고용불안뿐 아니라 영세업체들의 폐업으로 아예 일자리를 잃은 이주노동자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센터에는 상주하는 노동자들도 늘고 있다.

용인이주노동자 쉼터 관계자는 “경기도에는 5~10명 정도 일하는 영세업체들이 많아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일터를 잃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며 “원래 쉼터에는 외국인노동자가 3~4명 정도였는데 오갈 데 없는 이들이 늘면서 지금은 10여명이 상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세업체의 휴·폐업으로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증가세도 뚜렷하다. 노동부에 따르면 ‘경영상 필요 및 회사사정에 따른 퇴직’ 등의 이유로 사업장을 옮긴 이주노동자는 전년동기대비(10월 말 기준) 171% 증가했고, 해당사업장도 14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9월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성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올 8월 719명이었던 이동건수는 9월 949명, 10월 1149명으로 집계됐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선동수 상담팀장은 “회사들이 일을 점점 줄여가는 상황이고 일이 없을 때는 쉬는 일이 많은데 이주노동자들은 쉴 때 임금을 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일을 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해고되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강병한·김지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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