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의료영리화 발판,원격의료 허용을 즉각 중단하라 (2020. 5. 18.)
감염병 재난 극복을 위해서는 원격의료가 아니라
공공의료 강화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이 답이다!
코로나19를 빌미로 한 원격의료·의료영리화 시도를 멈춰라!
○ 정부·여당이 원격의료 허용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7일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디지털 기반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과 코로나 방역 계기 시범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운을 뗐다. 이어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기 특별연설에서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포스트 코로나’ 중점 육성 사업으로 꼽았다. 13일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포럼에서 노골적으로 ‘“원격의료” 긍정적 검토’의견을 밝힌 후 정세균 국무총리와 성윤모 산업통산자원부 차관,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말을 보탰다.
○ 15일에는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 김강립 차관이 중앙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새로운 기술을 의료와 접목시키는 방법에 대해 이미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계류중”이라며 “의료 이용의 사각지대나 현 의료체계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여당이 원격의료 허용에 온 힘을 쏟고 있다.
○ 현 정부와 여당은 지난 보수정권이 추진한 원격의료를 대표적인 의료영리화 정책으로 꼽아 비판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이를 반대했다. 정부·여당에서는 원격의료 대신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코로나 19와 관련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는 본인들이 비판했던 원격의료와 이름만 다를 뿐 방향은 같다. 코로나19 사태를 빌미 삼아 의료영리화 물꼬를 트려는 원격의료 도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 원격의료가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한국판 뉴딜’ 운운하며 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현 정부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비대면 진료라고 말만 바꿔 의료영리화를 재추진하려는 속내가 보인다. 정부·여당이 지금까지 설명한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전화상담 처방’이다. 이 조치는 이미 코로나19 확산 후 지난 3개월간 불가피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예외적인 전화상담 처방만으로 “뉴딜”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원격의료 허용, 즉 정부·여당이 말하는 비대면 진료 허용은 의료영리화 재추진을 위한 초석으로 읽어야 한다.
○ 현 정부와 여당은 지난 2018년 이미 원격의료 도입을 시도했으며, 이와 함께 의료기기 및 바이오의약품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뿐만 아니라 민감한 의료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까지 돈벌이 수단으로 삼을 수 있도록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지난달 29일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는“의료정보 상품화”를 ‘10대 산업분야 규제혁신방안’중 하나로 꼽았다.
○‘비대면 진료’ 선긋기는 의료법 제17조 1항이 진료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는 “직접 진찰”을 우회해 원격의료가 가능한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고, 또 스스로 부정해왔던 의료영리화를 추진했을 때 닥쳐올 저항감을 낮추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
○ 원격의료는 IT·통신업계와 원격의료 기기업계, 대형병원의 숙원사업이다. 원격의료는 수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안전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추진되지 못했다. 의료지식이 없는 환자가 원격 진료기기를 작동하거나 자신의 증상을 말하고 원격으로 처방을 받았을 때, 오진과 의료사고의 위험성은 전문 의료진이 직접 진료받았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높아진다. 오진이나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자가 책임을 오롯이 져야만 하는지 등 책임 소재 문제도 발생한다. 아울러,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에게 원격의료는 지식·정보격차로 인한 의료 불평등까지 초래한다. 원격의료를 향한 시선에는 오로지 기업의 이익만이 존재한다.
○ 한편, 원격의료가 본격화될 경우 대형 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원격의료 경쟁이 심화됐을 때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병·의원이 살아남기 어렵다.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한다는 원격의료는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의료전달체계까지 무너뜨릴 가능성이 크다.
○ 지난 6일‘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이후 모 유흥업소에서 시작된 집단 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와 언론이 2차 대유행을 경고한다. 원격의료를 대안으로 내세울 때가 아니다. 지금 시급한 것은 코로나19 환자를 진찰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원격의료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공공의료의 중요성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의 필요성은 상식이 됐다. 현재 병상 수 기준 10%에 불과한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할 방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열악한 보건의료노동 환경을 통해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함으로써 보건의료인력의 선순환을 가능케 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의료영리화가 아니라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만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절박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2020년 5월 18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 이 성명서는 보건의료노조 홈페이지(http://bogun.nodong.org/)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