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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8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2012 보건의료진보포럼 - 99%의 건강을 위한 우리의 대안'
ⓒ 노동건강연대
감정노동

2012년 1월 28일 저녁, 서울 대학로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2012 보건의료진보포럼 - 99%의 건강을 위한 우리의 대안'에 참석한 사람들이 '감정노동과 감시통제 : 노동자의 건강을 갉아먹다'를 주제로 한바탕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의 사회로 시작한 감정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두 토론자의 열띤 경험담과 동료들의 이야기들, 참석자들의 열띤 반성 및 제안들로 채워지느라 결국 제시간에 토론회를 끝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인 마트 노동자의 이야기와 대학병원 간호 노동자의 감정노동 에피소드를 전합니다.

"너 공부 안 하고 떼쓰고 그러면 마트에서 일한다"

대형마트에서 10여 년 이상 일을 해온 이희영(가명)씨는, 그 세월에 걸맞게 다양한 감정노동의 경험담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가장 처음 꺼낸 이야기는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는 동료 A의 이야기입니다. 여름날 마트에서 수박을 사간 고객이 고객만족센터를 찾았습니다. 구입한 수박도 안 들고 와서는 수박이 하나도 달지 않고 맛도 없으니 환불해달라고 했습니다. A는 그 수박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와야 어떻게라도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 고객을 돌려보냈고, 얼마 후 그 고객은 아주 작은 수박 한 조각(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을 들고 와서 결국은 환불해주었다고 합니다.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이해 안 가는 환불 요청'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심지어 다양한 환불이 반복되는 고객들도 있고, 그 횟수도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봐도 올바르지 않은 듯 한 행동들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회사에서는 특별히 환불 기준을 정하고 있지 않아 고객이 끝까지 우길 경우 환불을 해주어야 하고, 이러한 과정에 놓여 있는 노동자는 극도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동료 B는 오늘도 열심히 군만두를 굽습니다. 사람들이 먹기 좋게 자르기도 하고, 앞에 서서 기다릴까봐 재빨리 만두를 올려놓느라 화장실을 갈 틈도, 잠시 앉아서 쉴 틈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 저 멀리서 젊은 엄마, 중년의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면서 "너 공부 안 하고 떼쓰고 그러면 마트에서 일한다!"라고 하면서 지나갑니다. 엄청난 수치심과 분노가 생기고 때로는 너무도 위축됩니다. 그러나 절대 고객에게 화내면 안되고 자신의 감정을 입 밖으로도, 표정으로도 드러내면 안 되기에 묵묵히 일을 합니다.

요즘은 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분들이 학력도 다양하고 연령도 다양한데, 사회적 편견과 비인간적인 태도로 너무도 노동자들을 힘들게 한다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몇몇 노동자가 겪은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시식코너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라고 합니다.

계산했느냐 물었다고 '막말'... 결국 사표 쓰기도

2011년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노동, 건강권 문제를 제기한 '아주라 콘서트' 현장(서울 덕수궁 돌담길)
ⓒ 노동세상
감정노동

세 번째 이야기는 '동행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트에 가면 많은 노동자들이 다양한 일을 합니다. 물건을 진열하기도, 시식을 하기도 하고 물건을 팔기도 합니다. 마트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물건을 찾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을 때 마트 노동자들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언제부턴가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옆에 있는 마트 노동자들에게 물건의 위치를 물으면 물건이 있는 장소까지 안내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바로 '동행서비스'입니다.

물건을 진열하다가 누군가 하나 물어보면 반드시 목적지까지 함께해야 합니다. 일이 너무 많아 정시퇴근을 위해 30분에서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그 동행서비스로 인해 업무 부담이 더 과중해졌습니다. 그런데 동행서비스를 고객들이 인지하고부터 장을 볼 목록 들고 노동자에게 보여주며 물건을 다 찾아달라는 고객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미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노동자는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업무를 수행합니다.

마지막은 계산원 노동자입니다. 민주노총에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놓아주자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나 간신히 앉아서 일하는 것이 가능할 뿐 노동조합이 없는 곳은 앉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눈치 보이는 일입니다.

어느 날 이씨의 동료 C는 계산을 하던 중, 손님의 유모차에 물건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객님, 그 물건은 계산하신 겁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손님은 "내가 도둑으로 보이냐, 니가 뭔데 날 의심하냐"로 시작해서 결국 그 C를 직원휴게실로 부르고 상급자를 불러서, "너 그런 식으로 일하려면 우리 집에서 식모나 해라", "내가 너를 꼭 자를거다", "저 직원 꼭 잘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결국 C는 그 손님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아닌 건 아니다'라고 노동자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는 관리자가 필요한데, 무조건 고객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관리자만이 존재해서 노동자들은 더욱더 심한 상처를 받게 됩니다.

토론자 이희영씨는 "마트에서는 우리에게 '고객이 우리의 월급을 준다'고 복창하라고 합니다. 무조건 친절해야 하고, 안 된다고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교육합니다. 작년에 대형마트들은 '통 크게' 시작해서 '착한'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손해 보지 않고 저임금의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와 더 많은 친절을 강요하여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습니다"라며 회사가 노동자들이 도저히 감당해내기 힘들 정도의 감정노동을 생산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고 밥도 못 먹고 일하는데...

또 한 분의 토론회 참석자는 대학병원 간호사 최성미(가명)씨입니다. 서울지역 대형병원 간호사의 근속연수는 평균 2.5년. 간호사들이 가장 인간답게 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만둔다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최씨 역시 오랜 기간 병원에서 근무를 하며 다양한 사례를 보아왔습니다. 밥을 못 먹는 것은 기본이고, 물을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 해서 물도 안 마시고 일을 한다는 간호사들의 감정노동 이야기입니다.

간호사들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정신적·신체적으로 나약한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최씨의 동료 D는 신출내기 대학병원 간호사입니다. 혈압을 검사하러 병실에 들어가 남성환자의 팔을 걷어올렸습니다. 그 환자는 간호사를 바라보다가 팔을 더듬습니다. A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은 신출내기 간호사입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나왔다고 합니다.

연륜이 있는 간호사라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겠지만, 신출내기 간호사에게는 너무 힘든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간호사들에게 벌어지는 성추행과 성폭력사건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2003년 아무개대학 비뇨기과 교수가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자행한 사건에 노동조합이 문제제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이때, 작은 병원 간호사들에게 지지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작은 병원에서는 차마 싸우지 못하는데 너무 고맙다고 말이죠.

한국의 대학병원은 보통 간호사 한 명당 15명에서 20명의 환자를 돌본다고 합니다. 외국의 경우 간호사 한 명당 4~5명의 환자를 본다고 하니, 이미 업무의 과중은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와중에 최씨의 동료 E는 어느 날 한 환자의 이야기를 30분 동안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머릿속에는 다른 환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합니다.

E는 환자와 이야기가 끝난 뒤, 남은 환자들에 대한 일을 하느라 결국 아주 늦게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환자가 병원 홈페이지에 B를 '친절 간호사'로 신청했다네요. 여기서 다른 간호사들은 생각했다고 합니다. 1명이 친절을 느낄 동안 다른 환자 14명 이상이 불친절을 느꼈을 것이라고요.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 감정노동자

2012년 1월 28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2012 보건의료진보포럼 - 99%의 건강을 위한 우리의 대안'
ⓒ 노동건강연대
감정노동

마트 노동자나 간호 노동자. 그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원하든 원치 않든 정형화된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가면을 쓰고 사는지도 모르겠지요. 잠시 감정노동(Emotional labour)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으나, "직업상 고객을 대하면서 원래 감정을 숨긴 채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해야 하는 직원들이 늘상 직업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여러 가지 직업들이 떠오르실 거에요. 그리고 어찌보면 직장에서 일하는 모두가 이러한 감정노동에 휩싸여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러한 감정노동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앓을 수 있는 증상은 '우울증, 화병, 대인공포증, 공황장애, 사회 불안증, 소화불량, 불면증, 위장장애, 강박증,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불감증 혹은 공격적이거나 폭력적 울화병,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등' 정말 너무 다양해서 무섭기까지 합니다.

친절을 강요하는 이 사회는 결국 '위선적인 친절'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 사회는 사람에게 너무도 불친절한데 우리는 그 불친절함을 사람이 베풀어주는 위선적인 친절로 위로받고자 합니다. 전혀 위로가 되지도 않을 텐데 말이죠. 그리하여 때때로 '그 위선이 싫소'라고 말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고객, 환자로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주변의 노동자들이 저렇게 감정적으로 고되게 일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우리 사회가 노동의 기쁨을 느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미소를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이 발 딛고 서 있는 불친절한 노동조건에 대해서 사회가 함께 친절한 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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