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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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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 90호 | online 입력 2012-10-12

얼마 전 민주통합당 양승조 의원이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간호조무사의 명칭을 ‘간호실무사’로 바꾼다. 둘째, 시도지사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현재의 제도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급하는 면허제로 바꾼다.

그런데 이 법안을 둘러싸고 두 집단의 노동자들 −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이 대립하고 있다.

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과 대부분의 간호조무사들은 이 법안을 지지한다.

간호조무사들은 그 동안 “100만 원 조금 넘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해 왔고, 엄연히 병원의 주요 부분으로 일해 왔음에도 ‘간조’ 등으로 불리며 무시와 천대를 받아 왔다고 호소한다.

또, 그동안 자격증 제도 하에서 교육의 질 보장이나 인력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으니 면허제를 도입해 국가가 체계적 관리를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면허제도가 해외 취업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반면, 간호협회(간협)는 전국의 간호사와 간호대학생들에게 ‘양승조법’ 반대 서명을 대대적으로 받고, 항의 집회를 개최하는 등 이 법안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고, 공공노조 의료연대본부는 법안 반대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상당수의 노조원들도 수간호사의 독촉 하에 서명에 동참했다.

그러나 간협의 주장에는 문제가 많다. 간협은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서로 싸우는 전형적인 밥그릇 싸움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간협은 간호사의 전문성을 내세우며 ‘조무사가 간호사 행세한다’는 식으로 멸시한다. 이들은 간호조무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무관심하다.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며 ‘양승조법’에 반대하지만, 학원 단기 교육으로 대부분의 간호조무사가 양성되는 현재의 체계를 그대로 두자는 모순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간호조무사와 간호사의 이해관계는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 둘 모두의 조건이 향상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런 대안적 요구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루겠다.)

노동조건과 의료의 질

물론, 간호사들이 ‘양승조법’에 반대하는 배경에는 일부 정당한 우려도 있다.

현재 중소병원들의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이 워낙 열악해 간호사들이 도저히 일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중소병원 자본가들은 임금을 인상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해 간호사를 충원하기는커녕, 더 열악한 조건도 감수하려 하는 간호조무사들을 저임금에 채용해 간호사를 대체하고 있다. 그런데 ‘양승조법’이 통과되면 중소병원 자본가들이 더더욱 간호사 채용을 늘리지 않고 간호조무사로 대체하려 할 수 있다.

실제로 중소병원협의회는 ‘양승조법’을 지지하고 있다. 중소병원협의회는 그동안 자신들의 이윤을 침해하는 간호등급제(간호사충원률이 높을수록 수가를 많이 보장해 주는 제도)도 반대해 왔다.

우리는 간호 노동자들을 싼값에 착취하며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소병원 자본가들의 입장에는 추호도 공감해 줄 수 없다. 최소한의 간호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간호등급제를 폐지하라는 요구에도 반대한다. 이 점에서 간무협이 중소병원협의회의 편에서 간호등급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한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양승조법’이 통과되는 것 자체가 간호사 대체율을 높이고 전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간호등급제를 폐지하고 간호사 최소충원 비율을 더 낮추는 등 의료법을 추가로 손봐야 그런 개악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처럼 ‘양승조법’이 개악을 자동으로 낳지는 않는 반면에 그것이 간호조무사들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양승조법’은 그 자체로는 간호조무사들의 처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겠지만, 국가에 양성과 관리 책임을 물을 소지를 열어 줄 수 있다. 또, 매우 부분적이긴 하겠지만 해외 취업 가능성이 열릴 소지가 있다는 점도 있다.

따라서 간호사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간호조무사 노동자들에게 먼저 연대의 손을 내밀기 위해, ‘양승조법’ 통과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간호조무사들이 불충분하기 짝이 없는 ‘양승조법’을 디딤돌 삼아서라도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투쟁에 나서길 바라고 간호사들과 함께 싸우길 바란다. 간호조무사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향상은 결코 ‘양승조법’으로 자동적으로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만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투쟁에서 간호사들의 연대와 지지는 매우 중요하다.

턱없이 부족한 ‘양승조법’과 노동자들을 위한 대안적 요구

사실, ‘양승조법’을 둘러싼 두 노동자 집단의 갈등의 배경에는 간호 노동자들 전반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자리잡고 있다.

간호사들은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3교대와 엄청난 노동강도 때문에 평균 근속연수가 2년이 채 되지 않고 유산율도 높다. 특히, 중소병원의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은 훨씬 더 열악하다.

간호조무사들은 인력난 속에서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쥐꼬리 임금을 받고 있다. 또, 제대로 된 간호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와 천대를 받고 있다.

이런 조건을 그대로 둔 채, 똑같은 일자리를 두고 두 노동자 집단이 서로 싸우는 것은 ‘바닥을 향한 경쟁’일 뿐이고,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간호조무사들이 열악한 처지에 방치돼 있을수록 간호사들도 간호사 충원과 임금인상을 요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또, 병원의 이윤 논리 때문에 간호사를 충분히 채용하지 않는다면 간호조무사들의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전체 의료의 질도 떨어져 노동계급 전체에게 손해일 것이다.

‘양승조법’은 이런 핵심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모두를 위한 대안적 요구가 필요하다.

먼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두 집단이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싸고 싸울 것이 아니라, 두 집단이 단결해 간호 노동자 총수를 확대하고 임금도 올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병원 자본가들에게 간호사를 대폭 충원해 노동강도를 줄이고 임금수준도 높이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간호사들보다도 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천대받는 간호조무사들의 임금과 노동조건도 개선돼야 한다. 간호사 충원과 더불어 이들의 일을 보조할 간호조무사도 함께 충원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들이 자신의 경험을 발전시켜 간호사가 되고 싶다면 얼마든지 더 공부하고 훈련해 간호사 면허를 딸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할 필요도 있다.

또, 중소병원과 대형병원, 수도권과 지방 병원의 심각한 격차를 줄여 의료의 질을 상향평준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공립 병원의 비율을 대폭 높여야 한다.

이런 대안적 요구를 성취하려면 병원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에 도전해야만 하고, 모든 간호 노동자들의 단결이 중요하다. 이미 상당수의 병원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한 노동조합 안에 함께 조직돼 있다. 보건의료 산별노조들은 아직 노조가 없거나 취약한 지방 중소병원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의 단결을 고무하고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간호사들과 간호조무사들이 해묵은 갈등과 분열에서 벗어나 함께 단결하고 투쟁하며 서로의 노동조건을 개선해 나가길 바라고, 이를 위해 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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