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군인을 이라크에 보내는 미친 정부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우리에게 <화씨 911>은 가뭄 속의 단비와도
같다. 영화내용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 산만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이것만 분명히 하자. 아직도 이라크파병을 지지하는 정신나간 친구를
구제하고 싶다면, 혹은 이 전쟁을 둘러싼 부시와 자본가계급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오사마 빈 라덴 가족들이 9.11 테러 이후
어떻게 미국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고 9.11 덕택에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는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참전군인과 그 가족의 고통과 각성이
얼마나 뼈저린지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친지들과 함께 보라.
GM사 대량해고 사태를 다룬 <로저와 나>에서 작년 이맘때 개봉한
<보울링 포 콜럼바인>에 이르기까지 늘 정치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코믹(?) 다큐멘터리 영역을 개척해온 마이클 무어는, 더 강하고 더
충격적인 <화씨 911>를 통해 이라크 침략전쟁을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마이클 무어는 논쟁적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번에도
악당들이 지배하는 주류 미디어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기어코 교두보를
장악했다. <화씨 911>은 미국 개봉 첫주에 2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흥행 1위에 올라섰으며, 미국 도처에서 지금도 수많은 일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모든 극장에서 기립박수가 울려 퍼지고 있고, 공화당
지지자들과 참전군인 가족들마저 이 영화를 보고 반전운동 대열에
동참하고 있으며, 어떤 극장에서는 즉석 정치토론이 열리고 있기까지
하다.
이런 파괴적 잠재력을 두려워한 이들은 이 작품을 저지하려 총력전을
펴왔다. 제작비를 댄 영화사 디즈니는 배급을 거부했고, 백악관
대변인은 영화도 보지 않은 채 "거짓과 부정확으로 가득한 작품"이라고
비난했으며, 우익진영은 영화배급을 방해하려 특별 웹사이트를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은 일찌감치 무력화됐다. 영화 속 주인공 부시는
끝없이 스스로 본질을 폭로한다.("점령당하면 나라도 열받지." 영화 속
부시의 명언이다) 세 팀의 전문 변호사진의 조사연구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잇따라 제시하고, 마이클 무어의 웹사이트에 곧 등장할 FAQ(자주
하는 질문)은 논쟁을 돕기 위해 모든 관련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하여 <화씨 911>은 그들에게 히스테리를 불러일으키지만 우리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좁고 어두운 극장을 벗어나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경제파탄에 지친
미국의 가난한 민중이 유일한 탈출구로 군입대를 선택케 하고, 결국
소수의 탐욕을 위해 모두를 희생자로 만드는 이 식인체제에 맞선
투쟁에서 <화씨 911>은 '비판의 무기'를 자임하고 나섰다. 현실에 대한
긴장과 영화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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