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는 임신부들의 사회
임신 34주에 들어선 나를 보고 사람들은 더울 때 낳게 돼 고생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곤 한다. 그러나 나처럼 뒤뚱거리며 일하는 직원끼리
마주치면 한여름 산후 조리에 대한 걱정은 한가한 고민이 되고 만다.
“너희 부서에 너 말고 임신한 사람 없니 한 사람 더 있다고 그러면
나이트(야간근로)가 며칠만에 돌아오겠네 (부서에서)별 말 없어”
2001년 11월 모성보호관련법 통과 후 임산부에게 야간근로가 전면
금지되었고, 내가 일하는 병원은 작년 11월부터 금지시키고 있다.
초기엔 입덧과 유산 위험성에, 중기엔 눈에 띄게 불러오는 배에
익숙해지느라, 후기엔 복도를 걷기도 숨이 차 야간근로는커녕 직장생활
자체가 만만치 않은 임부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직원의 70%가 여성인 병원에서 동료의 임신소식은 축복과 반가움이
아니라, 한 달에 여섯 번 돌아오던 야간근무를, 한 달에 여덟 번 하게
만드는 불청객일 뿐이다.
임신과 관련된 문제를 마주치면 입사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저녁근무를 마치고 밤 10시쯤 퇴근하면서
낮근무 하고 오후 3시에 퇴근한 선배를 병원 앞에서 만났다. 이 때까지
집에 안 갔느냐고 물으며 인사를 하는데 인사를 받는 그의 얼굴이 이내
울상이 되더니 “주연아 나 어떻게 하니…”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묻다보니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선배는 아이를 낳은지 몇 개월 안 된 상태였고, 당시 그 선배 말고도
우리 병동에 임신한 선배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선배가 또
임신을 한 것이었다.
그때는 임산부 야간근로가 법으로 규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선배는
자신이 계획을 잘못해서 한 병동에서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출산휴가를
쓰게 되어 병동 일에 차질을 줄 것이 부담스러워 그렇게 울었던 것이다.
분명 축하 받고 존중될 임신이,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무슨 죄인 양 미안해해야 하는 현실을 보고 한동안 우울해하였고, 그
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사건 아닌 사건이었다.
그 뒤 3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더 나빠져 임산부를 제외한 사람들
입장에선 자신의 야간근로가 가중되는 현실 때문에 “임신한 사람만
나이트하기 힘드냐, 나이 먹어 봐라, 온몸이 다 아프다”며 억울함을
항변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임산부의 야간근로가 더 힘드냐, 나이 먹은 사람의 야간근로가
더 힘드냐를 가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는 출생율이 1.3명으로 세계 최저를 달리는 한국 임산부들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떠 안기는 방식으로 해결돼선
안 된다. 얼마 전 정부는 보육예산의 9배에 달하는 금액을 국방비
증액에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출산파업’이라는 흉흉한 신조어가 등장한 요즈음, 3년전 그 선배가
흘렸던 눈물을 이제는 사회가 닦아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주연/간호사(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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