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제5공화국’과 인터넷, 그리고 ‘안티삼성’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고 있노라면, 25년 전의 대한민국에 오늘의 미디어 환경을 대치시켜보고 싶은 욕구가 자꾸 일어난다. 79년 당시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매체가 있었다면, 신군부의 군사반란이 쉽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절대다수의 네티즌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었다면, 80년의 광주가 그토록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학살과 공포 속에서 고립무원으로 당하기만 했을까?
1979년, 신군부는 힘의 공백 속에서 정상적인 군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하극상의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모든 통신수단을 거머쥐고 ‘반란 저지세력’의 일거수일투족을 손바닥 드려다 보듯 하면서, 정보를 차단, 왜곡, 조작하고, 급기야는 기만전술까지 동원하여 군의 실권을 장악했다. 모든 정보를 독점한 신군부는 신문과 방송 등 언론까지 통제함으로써 정권찬탈의 계획을 실행한다. 마침내 신군부는 그들의 음모에 맞서 마지막까지 저항한 광주시민을 무참하게 짓밟고, 여론조작과 유언비어를 이용해 빨갱이와 폭도로 모는데 성공함으로써 대한민국 역사에 두 번째의 군부독재정권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1980년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그러나 79년과 80년 당시,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매체가 존재했다면, 신군부가 그들의 하극상과 천인공노할 광주 학살을 그토록 감쪽같이 덮어버릴 수 있었을까? 몇 안 되는 신문과 방송에 무력으로 재갈을 물릴 수는 있었어도, 수백만 네티즌들의 입을 막을 수 있었을까? 신군부가 퍼뜨린 여론조작과 유언비어로 시위에 직접 참여했던 20만 광주시민의 눈과 귀를 닫을 수 있었을까? 아니, 오히려 광주시민의 생생한 증언이 인터넷에 회자되어, 4,000만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그렇다. 피로 범벅이 된 광주의 실상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알려져, 인근지역과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졌을 것이며, 광주 민주항쟁은 그처럼 고립무원의 절망적 상황으로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술수와 기만으로 점철된 신군부의 군사전략은 낱낱이 공개되고, 국민의 피는 끓어올랐을 것이다. 공수부대가 철수한 뒤, 협동과 사랑으로 뭉쳐진 해방구 광주의 평화로운 모습은 전 국민에게 감동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았던 신군부의 여론 조작도 무위로 그쳤을 것이다.
인터넷은 분명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 오늘의 인터넷 시대에, 무력을 앞세운 여론조작은 오히려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의 힘은 몇몇 소수에 의해 날조된 여론, 왜곡된 여론, 조작된 여론이 들어서지 못하게 한다. 그 힘은 이제 독재의 무자비한 폭력을 그냥 두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언론, 침묵하는 언론에 칼을 꽂는다.
그렇다면, 이제 민주주의의 적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직까지 부정적이다. 인터넷 시대에 민주주의는 더 영속적이고, 교활한 자본의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안티삼성전자’를 사들인 삼성전자
지난 6월 7일 삼성전자는 한글인터넷주소 ‘안티삼성전자’를 매입했다. 이로써 삼성은 ‘삼성’ 앞에 ‘안티’를 붙여 삼성을 불편하게 하고 삼성에 반기를 든 대부분의 도메인을 접수함으로써 삼성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무노조의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삼성의 힘인 것이다. ‘트위스트 김’, ‘개똥녀’ 등의 사이버 테러 피해 사례가 언론을 장식하고 있지만, 이것은 조직화된 테러는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조직화된 네티즌들이 정권을 만들어낸 것처럼, 거대한 자본이 사이버 공간을 조직화한다면, 가공할 힘을 발휘할 지도 모른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인류의 관습과 윤리, 법과 제도가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지만, 사이버 공간에는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은 누구나 제약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백지 상태의 공간이며, 아무런 규칙도 없는 자유의 공간이다. 그러나 자유에 제한이 없을 때, 힘 가진 자의 독단과 전횡이 독버섯처럼 피어나듯이, 사이버 공간은 방임의 위태로운 공간이다.
그리하여 가치중립적인 인터넷 공간에서 인류의 보편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터넷 윤리교육과 제도적 장치를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필요한 주장이고 서둘러야 할 과제다. 그리고 그것은 ‘트위스트 김’처럼 익명의 폭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일은 물론이고, 거대 자본의 전횡과 조직적인 힘을 견제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인터넷의 힘이 소수 군사반란세력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엇이든 돈으로 사드릴 수 있는 거대 자본의 힘을 견제하는 데는 특단의 제도가 필요하다.
|
|
|
|
다음
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