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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편향된 시각으로 노동운동을 왜곡 묘사했다"는 노동계의 항의를 받아온 <중앙일보>의 '지금은 노조시대'(이하 노조시대)가 26일 '이달의 기자상(5월)'을 수상했다. 그러나 언론노조가 항의성명을 내고 침묵시위를 벌이는 등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언론노조가 '언론개혁의 동지' 기자협회에 비판성명을 낸 것은 88년 노조 출범이래 처음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13년 역사의 이달의 기자상도 권위에 적잖은 훼손을 입게 됐다.
지난 18일 기자협회(www.journalist.or.kr)는 153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에 <중앙> 노조시대 시리즈를 선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곧바로 논란을 일으켰다. 민주노총은 21일 성명을 내 "<중앙일보>의 이번 시리즈는 삼성재벌신문이 삼성의 무노조 경영 이념으로 노조를 매도하는 기획물"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도 "이번 시리즈는 일년 내내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다 파업 때만 되면 '노동자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부터 이어온 우리 언론의 고질병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 언론노조 노동자들은 26일 기자상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식장 밖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손병관
민언련은 "단순히 노동계에 비판적인 내용을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이 기사가 제시하고 있는 사실 관계 자체에 논란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기사는 무노동 무임금 관철, 민영화 확대 등 재계의 시각을 기본에 깔고 있는데,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잘못된 근거들을 끼워 맞추고 왜곡했다는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침묵시위에 참석한 언론노조의 한 상근자는 "이번 결정은 잘못됐다, 기자협회가 아니라 전경련이나 경총에서 줘야할 상"이라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심사에 참여했던 이성춘 기자협회 고문은 26일 시상식에서 "11건의 수상작 중 '노조시대'에 대해서는 평가가 상당히 엇갈렸다"며서 "'비노조, 반노조 편향성을 드러낸 기사', '노조문제를 심도있게 취재한 역작'으로 의견이 나뉘었지만, 다수결로 상을 주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고문은 "이달의 기자상은 20명의 심사위원이 거의 3심제로 심사해 문제되는 작품은 가차없이 제외시킨다"며 상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표혔다.
<중앙> 측에서는 김정수 경제연구소 전문위원과 강병철(산업부), 김기찬, 남윤호, 하현옥(이상 정책기획부) 등 특별취재팀 전원이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김 전문위원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을 준 용기에 치하를 보낸다"면서 "<중앙>이 더 열린 신문이 되라는 비판과 채찍으로 알겠다"고 짤막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중앙>은 지난 20일부터 '지금은 파업시대'라는 후속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2003년도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
위원장 : 이형균 한국신문방송인클럽회장
위 원 :
강지원 변호사, 전 청소년 보호위원장
고명진 상명대학교 교수 / 전 한국일보 부국장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김영호 시사평론가 /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상무
김학순 경향신문 부국장
김혜원 전 코리아헤럴드 부국장
송광석 경인일보 편집국장
신병식 SBS 해설위원
안종주 한겨레신문 심의위원
육정수 동아일보 디지털 뉴스팀장·부국장
윤혜원 연합뉴스 논설위원
이규진 중앙일보 미디어 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이성춘 정치평론가 / 전 한국일보 이사
이원우 한경대학교 총장
이진협 매일신문 편집국장
임철 매일경제신문 주간국 국장
정대철 한양대학교 신방과 교수
정해영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
그러나 기자협회가 위촉한 심사위원단의 결정임에도 불구, 반발의 목소리는 기자협회 내에서도 터져 나왔다.
기자협회가 발행하는 <기자협회보>의 한 기자는 기자칼럼을 통해 강한 '유감'의 뜻을 표출했다.
25일 발행된 기자협회보의 칼럼 '이달의 기자상 유감'은 "기자는 심사위원의 권위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지만, 심사위원들이 <중앙> 시리즈를 과연 입체적으로 분석했는지 의문"이라며 "이 시리즈는 연재가 시작된 후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히다가 결국 언론중재위에 제소됐다"며 5월 29일자 <중앙>에 금속노조의 반론보도문이 게재된 사실을 적시했다. 시각을 떠나서 팩트 자체에 대한 논란이 있는 기사를 싣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칼럼을 쓴 전관석 기자는 "언론개혁과 신문개혁을 외치며 빗속 거리에 서 있는 언론노동자들에게 심사위원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중앙> 시리즈에 '수상 부적합'이라는 소수의견을 낸 심사위원 김영호씨는 "후보작들을 놓고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을 낸 작품들을 모아 2차 심사를 벌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모르다"면서도 "그러나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라도 집행기구(기자협회)가 심사위원단의 결정에 간섭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특히 20명의 심사위원단이 대부분 제도권 신문·방송·통신사의 전현직 간부들로 구성돼 있어 '변화된 시대의 진보적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제도권 언론사들의 나눠먹기'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외의 논란을 의식한 듯 이상기 기자협회장도 시상식 내내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회장은 인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작품을 가지고 논란이 있다. 민주노총과 언론노조에서 성명을 내줬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기꺼이 고칠 것은 고치고, 잘된 것은 매진하겠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지만, 한 사람의 의견도 소중하게 듣는 것 아니냐? 그래서 기자들이 취재원의 반론을 실어주고 그러는 것이다."
민주노총과 언론노조는 기자협회에 '심사과정 공개와 심사위원 구성의 재점검'을 요구했지만, 후유증을 수습하기 위한 기자협회의 즉각적인 조치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시상식 도중 갑자기 "앞으로 심사과정을 공개하면 어떻겠냐"고 즉석제안을 했지만, 이성춘 고문은 "우리(심사위원들)끼리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기자협회 사무국 역시 "심사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상을 주기로 결정했다는 사실만 얘기해줄 수 있다"며 심사 과정의 투명한 공개에는 난색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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