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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850만원 대학생 K씨의 대학생활

by 노안부장 posted Sep 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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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850만원 대학생 K씨의 대학생활
임세환 기자 





K씨는 한 학기에 등록금 850만원을 내야 하는 서울 모 사립대학의 대학생이다. 부담이 크지만 요즘 사립대학 등록금이 800만원을 훌쩍 넘는 것은 예삿일이다. 이화여대 등록금은 879만원, 숙명여대 862만원, 추계예술대 858만원, 을지대 856만원, 아주대 842만원이다.

의대 등록금은 1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고려대 의대생은 1152만원, 건국대 의대생은 1131만원, 이화여대 의대생은 1128만원의 등록금을 내지만 K씨는 이들이 부럽다. 자기보다 200만원 더 많은 등록금을 내는 대신 이들은 미래를 보장받는 대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국립대 등록금도 만만치 않다. 서울대는 591만원, 인천대는 496만원, 서울시립대와 충남대는 각각 473만원과 451만원이다. K씨는 그래도 국립대가 사립대보다 좋다는 생각을 대학을 다니는 내내 떨칠 수가 없다. 850만원의 등록금은 아무래도 늘 아깝기 때문이다.

매 학기 850만원, 아니 졸업까지 남은 학기 또한 더 많은 인상을 각오해야만 하는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하면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 더 갑갑하다. 공무원 시험을 생각해보지만 너도나도 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바람에 겁이 덜컥 난다. 취업이 안 되니 대신 부모님들에게 돈을 받아 장사를 하는 선배들이 많다. 명색이 사장이지만 대부분 PC방, 프랜차이즈 분식집, 치킨 가게, 인터넷 쇼핑몰, 커피전문점, 택배 회사 등을 개업한다.

뛰어드는 사람이 많다 보니 망하는 선배들도 많다. 꼭 10년 전 IMF 외환위기 때 직장에서 퇴출된 실직자들이 퇴직금을 들고 뛰어든 벤처 기업 창업 행렬을 닮아있다. 10년 전에도 벤처 열풍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자영업자가 된 이들은 졸업 후에도 여전히 취업 전선에서 뛰어다니며 ‘실업자’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를 달고 있는 선배들보다 처지가 낫다. 부모님에게 손 벌릴 처지가 아닌 K씨는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죽을 각오로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런 이유로 K씨는 학교 앞 영어회화 학원을 등록했다. 한 달에 20만원이다. 학교 앞 하숙비 40만원, 휴대폰 요금과 교통비 합쳐서 매달 10만원의 기본 생활비에 20만원의 부담이 얹혀졌다. 용돈에 이래저래 들어가는 돈을 합치면 매 달 생활비가 100만원에 육박하게 됐다. 그래도 학원비 한 달 20만원은 대학 등록금보다 더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특별히 낭비를 하지 않는데도 대학생 K씨의 서울 생활에 한 학기에 1500만원(등록금 850만원, 학원비 및 생활비 6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하다. 이 부담을 모두 부모님께 떠넘기기에는 면목이 없다. K씨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교 앞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 앞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급료가 시간 당 3500원, 커피숍이나 호프집은 시간 당 4000원이다. 학교 수업과 학원 때문에 아르바이트에 많은 시간을 낼 수 없는 K씨는 일주일에 3일, 하루 8시간 동안 하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이렇게 하면 일주일에 9만 6천원, 한 달에 40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하숙비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K씨는 요즘 늘 다음 학기 휴학을 생각한다. 차라리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서 대학을 계속 다니든지, 아니면 아예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일찍 돈벌이를 찾아 나서든지 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주변에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휴학을 한 선배들, 친구들이 부지기수다. 그 중에는 외식업체에 아르바이트로 취업했다가 아예 직원으로 눌러앉은 선배도 있다. 더 이상 대학생도, 휴학생도, 실업자도 아닌 그의 삶이 부럽기만 하다.

평소에 신문을 열심히 보지는 않았지만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언론에서 들으면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고 하니까 겁이 더 덜컥 난다.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세를 낮춘다고 하는데 K씨나 K씨 부모님에게는 득 될 것이 없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전셋집에서 살고 있는 부모님은 벌써부터 집값 상승을 걱정하신다.

어느 날 밤 문득 K씨는 이부자리에서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남들보다 특별히 낭비하는 것은, 게으른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명품 쇼핑을 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또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면 K씨의 마음은 무겁다.

K씨는 잠에 빠져들기 직전, 내일 늦지 말고 새벽 영어회화학원에 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내일은 수업도 많고 아르바이트도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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