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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업무 외주화로 잘려 나가는 노동자들

by 노안부장 posted Nov 0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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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업무 외주화로 잘려 나가는 노동자들

정규직→전환배치→외주화→구조조정…오늘 부당해고 지노위 심판


지난달 31일 찾아간 전북 익산시 영등동 익산산업단지. 이곳에는 (주)만도·(주)LG화학·(주)LG생명과학·(주)벽산·동양실리콘(주)·한국세큐리트(주) 등 크고 작은 사업장이 몰려 있다. 사업장 주변으로 은행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겉으로 봐선 조용한 여느 산업단지와 비슷했지만 길목에 들어서니 현수막과 천막이 보였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렸지만 이날로 천막농성 240일째에 접어든 화학섬유노조 한솔홈데코지회(지회장 홍순근) 조합원 84명에겐 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지난 3월14일부터 직장이 폐쇄돼 있기 때문이다.

한솔홈데코 익산공장 부지는 33만제곱미터(10만평). 익산산업단지에서도 공장부지가 가장 넓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정문 앞에 자리 잡은 천막과 길거리가 전부였다. 조합원들은 공장 옆 근린공원에 있는 벤치에 모여 있었다. 가림막이 있어 그나마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한솔홈데코 노동자 점심식사
  • 추석 연휴 이후 처음으로 전 조합원이 모인 지난달 31일, 한솔홈데코 노동자들은 천막에서 삼계탕을 점심으로 먹었다. 천막농성 100일째까지 이렇게 매일 천막에서 밥을 해 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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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해고자이건 아니건 간에 같이 가는 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낙오되는 조합원 없이 모두 함께 정문으로 들어가 기계를 정비하고 생산합시다.”

홍순근 지회장은 조합원들에게 “서두르지 말자”고 당부했다. 지난 추석연휴 이후 조합원들이 다 모인 것은 이날이 처음이라고 했다. 직장폐쇄 이후 생활고를 겪기 시작한 조합원들 가운데 50여명은 건설현장 등으로 생계투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밭에 나가서 풀도 뽑고 기술있는 사람은 기계 보수도 하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이 항상 나를 기다려 주는 건 아니더라고요. 15년 동안 회사에 정을 두고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는 그게 아닌가 봐요.”

김상열(39)씨는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조합원들의 마음이 간절하다고 했다.

조합원들은 하루 5명씩 조를 짜 매일 밤 천막을 지키고 있다. 생계투쟁에 나가지 않는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해 회사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약식집회를 연다. 공장이 워낙 넓어 걷는 데만 30분은 족히 걸린다. 생계투쟁에 나서는 조합원들도 자기 순번이 되면 일을 마치고 천막으로 돌아와야 한다. 장기투쟁 사업장의 상징이 된 기륭전자 천막이 철거된 다음날, 익산시청은 지회에 천막 철거를 요청했다고 한다. 밤마다 조합원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교섭 중 느닷없이 닥친 전환배치·외주화

마루바닥재와 강화마루를 생산하는 한솔홈데코 익산공장 노동자들은 1년 전인 지난해 9월 언론을 통해 공장 매각설을 접했다. 지난 2005년에도 아산공장 노동자 100여명은 예고도 없이 불어닥친 매각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익산공장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결국 화섬노조에 가입했다. 조합원은 생산팀과 설비·보전팀 노동자가 각각 절반 정도였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13차례 단체교섭이 진행됐지만 150여개 교섭안 중 하나도 합의하지 못했다. 회사측은 교섭 도중에 지회 간부들에게 경고·감봉·정직 등 징계를 내리더니 급기야 지난해 12월 말 “설비·보전부문 매각”을 통보했다. 전기·기계·보일러 등을 정비하는 설비·보전부문에는 홍순근 지회장과 부지회장을 비롯해 지회 간부 14명이 소속돼 있었다.

보전팀에서 일하던 조합원 44명은 지난 1월 말 총무과로 전환배치됐다. 15년 남짓 보전팀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회사측은 “폴리텍대학에 가서 전직예정자 교육을 받거나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라”고 요구했다. 정규직이던 이들에게 협력업체 비정규직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전환배치에 반발해 단 3일 동안 4시간씩 부분파업을 벌였던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230일이 넘는 직장폐쇄였다.

직장폐쇄 후 가동중인 한솔 공장
  • 직장은 지난달 31일로 232일째 폐쇄돼 있지만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일부 관리직원과 계열사 직원들이 파견돼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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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의 신호탄 ‘외주화’

그런 가운데 지난 8월 초 조합원 36명이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이 해고통지서를 보고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편지봉투에 ‘해고통지서’라고 딱 찍혀 있는데 정말 기분 나쁘더라고요.”

보전팀에서 일했다는 최영진(38)씨는 해고통보를 받았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회는 지난 9월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3일 오전에 지노위의 심판회의가 열린다. 회사측이 제품 생산과 함께 핵심적인 업무였던 보전부문까지 외주화하면서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것이다.

현재 협력업체 대표는 한솔홈데코의 전직 임원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들이 협력업체 직원이 될 경우 현행법상 한솔홈데코는 노동 3권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다. 한솔홈데코가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면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더 쉬워지는 것은 물론이다.

제조업으로 퍼지는 ‘아웃소싱’ 바람

한솔홈데코 집회준비
  • 한솔홈데코지회 조합원들이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율동패부터 풍물패까지 조합원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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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화·분사 등 아웃소싱 바람은 한솔홈데코 주변 공장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솔홈데코 바로 맞은편에 있는 벽산은 적자품목을 만드는 일부 생산라인을 내년에 분할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벽산 노동자들은 고용보장을 촉구하며 지난달 14일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한솔홈데코와 벽산은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업체 모두 건축자재를 생산하고 있고, 벽산 역시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지 나흘 만에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공격적 직장폐쇄인 셈이다.

외주화든 분사든 형태만 달리할 뿐, 정규직이었던 노동자들이 간접고용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달 23일 벽산의 5개 공장 조합원 200여명은 서울 본사 앞에서 상경집회를 열고 “10월27일 교섭을 재개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측은 약속한 날 교섭장에 나오지 않았다. 노조는 대화를 통한 고용보장을 촉구하고 있지만 회사측은 “경영권 문제”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벽산과 한솔홈데코 노동자 모두 고용보장과 직장폐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인 한국델파이도 대주주인 미국델파이가 올해 말까지 조향·제동장치 등 비핵심 분야에 대해 분리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노사갈등이 일고 있다.

장종수 화섬노조 전북지부 사무국장은 “기업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아웃소싱을 한다지만 생산라인 또는 부서별로 외주화하면서 ‘신종 노조탄압 수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외주업체는 실질적 권한이 없는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기사입력: 2008-11-02 05:09:42
  • 최종편집: 2008-11-03 14: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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