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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이야기(1)

by 노안부장 posted Sep 0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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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머물렀던 한국을 떠나며 : 한국에 왔다

[기고]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이야기(1)

섀켈 아흐메드 샤킬(이주노조)  / 2008년08월27일 10시47분

서울경인 이주노조(MTU) 전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이주노동자 샤킬 씨가 16년 간의 한국생활을 마감하고 8월 26일 방글라데시로 돌아갔다.

1992년에 한국에 들어와 숱하게 고생하다가 1998년에 산업재해를 입어 장기간 치료를 받았고 산재요양 이후 2006년에 근로복지공단에 직업훈련비용을 신청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외국인은 대상이 아니라면서 기각했다. 이에 그는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까지 가서 올해 3월에 소송이 기각되자 헌법소원까지 내 놓은 상태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 어렵게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전체 이주노동자의 처지에 대해 눈떴고 이주노동자운동에 참여하면서 점차 활동가가 된 샤킬 씨는 2005년 이주노조 설립 직후 초대 아느와르 위원장이 표적단속 되었을 때, 직무대행을 맡아 위원장 석방과 노조 사수 활동에 헌신했고 지금까지 이주노조 조합원이자 활동가로서 역할을 다해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이주운동 진영에서 법무부 면담도 하고 각계 인사 탄원서도 수백 통을 보냈으나 법무부에서는 헌법소원 기간 동안의 체류를 보장하지 않겠다며 출국명령을 내렸고, 샤킬 씨는 고심 끝에 귀국 결정을 했다. 20대 청년이 40대 중년이 되어 돌아가는 마음을 다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이주노동자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활동가의 최소한의 기록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긴급히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글은 오늘(27일)부터 3일간 연속으로 실린다.

정리: 정영섭 (서울경인이주노조 사무차장)

1. 한국에 오기 전 : 방글라데시에서의 삶

▲  섀켈 아흐메드 샤킬 서울경인이주노조 전 위원장 직무대행/참세상 자료사진

1963년 1월 1일에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육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셨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였다. 위로는 형이 한 명, 누나가 두 명이 있고 밑으로는 여동생이 두 명, 남동생이 두 명 8남매였다. 그 당시에는 일반적인 자녀 숫자였다. 지금은 1-3명 정도 낳는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가족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인 인물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부모님은 의사가 되기를 바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들어가서 정치학을 공부하기를 원했는데 집에서 반대했다. 결국 경제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다카에 있는 국립 JAGANNATH UNIVERSITY를 다녔다.

대학에서는 무지하게 활동을 했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71년에 독립하고 나서 74년도에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 정치활동도 중단되었다. 굶어 죽는 사람들도 많았고, 정치활동 하다가 탄압당해서 많이 죽었다. 독재 하에서 학생운동 활동가들이나 좌파 활동가들이 많이 죽었다. 대학 들어오기 전에도 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가족들도 하루 세끼 먹기 힘들었고 대부분의 가정이 마찬가지였다. 학비도 내기 어려운 가정도 많았고 우리 집도 그러했다. 당시 방글라데시의 어려운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아버지 힘들어하시는 것 옆에서 보았다. 차비를 아끼려고 세 시간을 걸어서 정부청사에 다니셨다. 물가가 엄청나게 폭등했다. 형도 대학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형이 벌면서 생활이 조금 나아졌다.

대학 시절에 군사독재정권이 있었다. 82년도에 군사독재가 들어서서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우리가 숨어서 조금씩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학생운동의 투쟁으로 9년 만에 군사독재 정권이 91년도에 무너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군사정권과 손을 잡았고 선거에도 나갔다. 다른 쪽에서는 투쟁을 계속했다. 정당 별로 학생조직들이 나뉘어 있었는데, 노력을 해서 학생단위들이 공동투쟁 단위를 꾸려서 투쟁했다. 학생들이 투쟁을 하고 노동자, 농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게 되어 결국 91년도에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졌다. 내가 지지하던 당에서도 활동했다. BNP(BANGLADESH NATIONALIST PARTY) 학생조직의 한 지역조직 사무국장을 했다. 학생운동 끝나고 나서는 청년조직에서 수석 부위원장 역할을 했다.

독재가 무너진 후 91년에 BNP가 집권을 했다. 국회의원도 많이 배출하고 국무총리도 나왔다. 활동 속에서 갈등들도 많았다. 반대 그룹들이 많았다. 정치깡패들, 폭력조직도 많았다.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지역에서 피신하게 되었다. 그 이유도 있고, 고향에 있을 때 집에서 건설자재 가게를 했는데 여러 문제로 가게가 잘 안되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로 국외로 좀 나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고, 유럽이나 일본으로 가려고 나왔다. 처음에 홍콩에서 한 달 넘게 있었는데 유럽이나 일본으로는 가기가 쉽지 않았다. 92년 3월 2일에 비즈니스 비자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2. 한국에 온 후 : 초기 생활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에 인천 부평에서 공중전화기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다. 아침 8시 반부터 밤 9시까지 일하면서 30여 만원 정도 받았다. 탈의실에서 방글라데시 4명이 살았다. 그 당시 자진신고를 하면 6개월씩 체류를 연장해 주었다. 94년 5월 26일까지 그 공장에서 일했다. 이상공업사라는 이름이었다. 한국말도 모르고, 한국음식도 안 맞는데 계속 한국음식만 줘서 몇 개월 동안 고생했다. 물만 말아 먹었다. 나중에 겨우 의사소통을 조금씩 해서 나아지기는 했다. 공중전화기도 만들고 부스도 만들고 전화 기록하는 기계도 만들었는데 대부분 프레스 작업, 물건 운반 작업을 했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야”, “이 자식아, 새끼야” 등으로 불렀다. 내가 그때 29살, 30살이었는데 실습나온 10대 학생들조차 우리에게 욕하고 반말했다. 심지어 언제인가는 때리기까지 했다. 자기들 시키는 대로 잘 하라는 것이었다.

토요일 밤이나 일요일에는 공장 식당에서 밥을 잘 못 먹으니까 밥을 밖에서 사먹어야 되는데 어디서 뭘 사먹어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 주변에 방글라 사람이 있어서 음식 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해 먹었다. 월요일날 한국 직원들이 음식냄새 난다며 밥을 안먹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그 후에는 토요일 일요일에는 음식 못해먹게 주방문을 잠궈버렸다.

다 안좋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장이나 대리, 경비 등은 잘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그때 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

그 때 인천출입국에서 6개월씩 연장을 해줬는데, 시 바깥으로, 예를 들어 서울로 놀러 나오려고 하면 신고도 해야 했다. 여권도 사장이 갖고 있었다. 비자기간이 만료되서 여권과 비행기표, 체불임금을 달라고 했더니 사장은 공항에 가서 주겠다고 했다. 결국 어쩔수 없어서 여권, 비행기표, 임금을 포기하고 다른 데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같이 일하던 방글라 사람 한 명 ‘알리’는 손가락이 절단당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것도 내가 일하던 바로 옆에서. 알리는 일을 빨리해서 사장에게 잘 보이려 했는데 그러다가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절반 잘렸고 사장은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내가 가서 안정을 시켰고, 과장이 와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내가 같이 가겠다고 했더니 일해야 한다면서 못가게 했다. 9시에 일 끝나고 병원 갔더니 손가락을 붙이지 않고 그냥 절단되어 있었다. 내가 화가 나서 손가락은 어딨냐고 물었더니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왜 안붙였냐고 했더니, 사장이 붙이면 치료기간이 오래 가니까 그냥 자르라고 했다고 했다. 봉합수술을 하면 돈도 많이 들고 치료기간도 오래 걸리고 일도 못하니까 그런 것이었다.

병원 환자들도 심하다고 한마디씩 했다. 알리가 같이 있어달라고 해서, 나랑 다른 친구가 돌아가면서 있으려고 했는데 사장은 있을 필요가 없다며 못 있게 했다. 알리는 산재보상금을 본인 통장이 없어서 사장 통장으로 받았다. 사장은 그것도 공항에서 주겠다고 했다. 알리는 그걸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 출국했다.

주변의 다른 방글라 사람들은 우리가 그래도 제일 좋은 공장에서 일하고 제일 좋은 곳에서 숙식한다고 말했다.

그 때는 공장 기숙사에도 잘 못들어가게 했다. 다행히 다른 공장에 아는 친구가 있어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조건이 있었다. 다른 한국 사람들이 보기 전에 6시 30분까지 화장실 사용이나 씻는 것을 마치고, 저녁 8시 반까지 방에만 있으라는 것이었다. 소변도 방에서 보라는 것이었다.

한 보름 정도 거기에 있다가 금정에 있는 도금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다른 데는 여권이 없다고 하면 쓰려고 하지 않았다. 이 회사 사장을 만났더니, 임금은 나중에 정하겠고 일 할 수 있는지 우선 보고 정하겠다고 했다. 도금이 뭔지도 몰랐다. 철 도금이었는데 엄청 무거운 제품들이었다. 하나에 130kg 정도 했다. 이것을 하루 종일 운반했다. 그래서 3개월도 못 채우고 못하겠다고 했다.

기숙사는 공장 안에 있는 방이었는데, 2층 침대에서 네 명이 생활했다. 들어가기 전에 얘기해서 그런지, 욕 같은 건 없었다. 돼지고기도 주지 않았다. 식사는 잘 해주는 편이었다. 임금은 55만원 정도였다. 한국사람은 180만원 받았다. 거기서 그만두고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갈 데가 없어서 주변에 있는 여관에 들어가서 낮에 자고 밤에 나가서 사람들 만나고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그렇게 해서 자동차 부품업체 들어갔다. 94년 말에서 95년 초 즈음이었다. 안산 구반월 사사동에 있는 업체였다. 사전에 가서 봤는데 많이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하니 많이 힘들었다. 남자는 두 세 명이고 나머지는 나이 많은 여성들이 7-8명 있었다. 물건 들어오면 다 내리고, 공장 내에서 옮기고, 제품이 나오면 다시 싣고 하는 일을 반복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다. 공장장이 욕도 많이 하고 화도 내고 때리려 하기도 했다. 사장이랑 그 사촌인 과장한테 얘기도 많이 했다.

그러다가 98년 2월 25일에 허리를 크게 다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허리가 너무 약해져서 공장장한테 계속 얘기해서 무리한 작업을 하지 않도록 요청했는데 처음에는 병원 다니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고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었다. 그걸 사장한테 줬다. 내가 회사에서 정밀도를 요구하는 중요한 파트의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장 얘기는 내가 없으면 어려우니 기계만 다루면서 점심시간에 병원 다니라는 것이었다. 병원비는 주지 않았다. 내가 허리 아프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기계를 옮기는데, 2월 25일도 그런 날이었다. 내가 허리아파서 못 들겠다고 했는데 같이 들면 괜찮다면서 공장장이 화까지 냈다. 그걸 옮기다가 다쳤다. 다리가 뻣뻣해져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일 끝나고 2분 거리의 숙소에 30분이 걸려서 도착했다. 밤에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아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했다. 아침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 꼼짝도 못했고 택시도 오지 않았다. 결국 물건 납품하는 직원이 트럭을 끌고 와서 병원에 갔다. 다니던 병원에서는 치료하기 힘들다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앰뷸런스 불러서 부천 가서 MRI를 찍었다. 심한 디스크였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회사 가서 얘기했더니, 니가 어디가서 돌아다니면서 다쳤는데 어떻게 아냐면서 비행기 티켓 사서 빨리 집에 가라고 했다. 약까지 사주면서.

수원에 있는 엠마우스 이주노동자 상담소 연락처를 갖고 있어서 거기에 연락했더니 와서 상담받으라고 했다. 걷기조차 힘들어 가기 힘들다고 했더니 그래도 오라고 했다. 다음 날 택시를 타고 수원으로 갔다. 택시에서 내려서 사무실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세 사람이 부축해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렇게 심한지 몰랐다면서 회사와 얘기하겠다고 했다. 엠마우스에서 회사에 전화했고, 안산 갈릴레아 상담소에 연결했다. 거기서 테레사 누나랑 신부님이 방에 왔다. 그분들이랑 사장을 만났더니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다음 날 공장장이 찾아와서는 도대체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허리 아프다고 MRI 사진 보여줬더니 뭘 아는지 보면서 괜찮다고 했다. 좀 있다 다시 오더니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을 받을 거라고 했다. 그동안 들어간 치료비는 어떡하냐고 했더니 그건 니가 내라고 했다.

그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났더니 그 의사도 자기 병원에서는 힘드니 중앙 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공장장이랑 같이 침도 맞으러 갔다. 그 의사는 치료 받으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입원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없었다. 공장장이 사장이랑 얘기하더니 다음 날 안산 중앙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 때가 98년 3월 6일이었다. 중앙병원에서 수술받고, 이대 동대문 병원에서 2차 수술을 받고, 3차 수술도 거기서 받았다. 입원하고 나서 산재신청을 했다. 그래도 산재보험이 적용안되는 비보험 항목이 있어서 2천만 원 가까이 들어갔다. 휴업급여 받는 거랑, 친구들한테서 빌린 거랑 장애등급 받아서 보상금 받은 게 들어갔다.

산재요양 기간은 200년 7월 30일에 1차가 끝났고, 재요양 신청을 해서 2001년 3월 23일에 재요양 허락을 받았고 2002년 10월 4일에 끝났다. 그 뒤에는 후유증상진료카드를 2년 씩 두 차례 받아서 통원치료를 했다. 그 때에도 특진비나 약값이 많이 들었다. 2006년 10월 3일에 그것도 끝났다. (다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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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민영화? 운하에 물대려고?

    물 민영화? 운하에 물대려고? 외국 실패 증명돼, 물값↑ 단수가정↑… 장사꾼 MB의 속셈 그가 말했다. ‘수도, 전기, 가스, 의보’ 4대 공공부문은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두 달 만에 그는 스스로의 말을 뒤집었다. 붕어인가? 아니면 단기기억상실증인가? 기억을 ...
    Date2008.08.25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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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륭전자 직원들을 살려주세요.

    Date2008.08.25 Category영상뉴스 By노안부장 Views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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