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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소품이 아니라 선물이잖아요." -어느 고마운 가수에 부쳐

 

 

이글은 하종강 선생님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글은 김형민(산하) 님이 쓰신 것입니다.

 

스타 도네이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연예인들이 어려운 처지의 가족이나 아이들을 찾아가 일일 친구가 되어 주고 스스로 호스트가 된 포장마차를 열어서 그 수익금을 전달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이었지요. 리포터나 MC 정도로만 연예인들을 대했던 저로서는  뜨아~~를 외칠만큼 많은 연예인들을 실제로 구경할 수 있는 전무후무의 기회이기도 했고요.


어느 날 미아리 꼭대기의 단칸방을 찾은 적이 있어요.  아빠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가사도우미 하는 엄마가 두 형제를 기르는 집이었지요.  그런데 그 중 둘째가 희귀병에 걸려 있었어요.  사주를 보는 점쟁이들도 얘기할 엄두가 안 나서 그냥 끌어안고 함께 울고 싶을 만큼 꽉 막힌 사주가 있다는데, 그 날 엄마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그 느낌이 들었답니다.  컴컴한 냉기가 온 집안에 범벅이 되어 감돌았고, 뜻밖에도 밝았던 아이들의 웃음까지도 서글프게 보였으니까요.


처음에 헌팅차 집을 다녀온 뒤 내일 어느 연예인이 와서 아이들을 도와 줄 건지 물으니 한 이름이 귓전에 와 닿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연예 쪽으로는 식견이 좁고 얕은 처지인지라 그리 친숙하게 와 닿진 않더라구요.  답답한 작가가 이 노래 몰라요?  하면서 흥얼거려 주는 멜로디를 듣고서야 아 그 노래 부른 사람이냐? 머리를 긁어야 했어요.  작가는 이 무식한 PD와 작업을 하고 있다니 하며 머리를 쥐어뜯었고 말이죠.

촬영일 아침, 좁은 주택가 골목을 요리조리 빠져나간 끝에 이런 데까지 차가 올라오는구나 싶은 고지대 꼭대기로 차를 몰던 때였어요.  그런데 전화가 왔습니다. 매니저였어요.  벌써 도착해 있다는군요. 화들짝 놀라서 약속 시간을 어긴 게 아닌가 확인해 보니 그런 건 아니고 그쪽이 일찍 도착했던 거더군요.  연예인이 우리보다 일찍 현장에 나타난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 무척 당황했죠.  


허둥지둥 집에 닿아 보니 이 부지런한 가수는 벌써 분장 끝내고 차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이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죠. 보통 연예인들의 선탠 가득한 차 문이 열리는 타이밍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큐 사인이 나기 직전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지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웬지 민망한 마음에 “어이쿠 이거 저희가 늦었네요.” 하고 인사를 하니 명료하고 톡톡 튀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뇨 저희가 빨리 왔어요.  지각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서둘렀거든요. 애들하고 약속인데.”


아침 8시에 일 나가는 엄마 없는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 주고 오후엔 롯데월드까지 다녀오는 스케줄이었어요,  길면 반나절이고 짧으면 두어 시간, 심하게 짧은 경우는 “자 60분 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식의 스케쥴 속에 아금바금 찍어대야 했던 입장에서는 마냥 고마울 수 밖에 없죠.  “그럼 오늘 다음 일정은 없으신 겁니까?”라고 물은 건 체면치레만은 아니었어요.  그러자 또 한 번 명료한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저 오늘 다 비웠어요. 프리예요 하하하.”  

그런데 또 세상 일이란 게 그렇더라고요.  지금부터 60분!의 스케쥴이 떨어지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떡이 되든 그 시간 내에 맞춰서 모든 것을 해내게 돼요.  하지만 “니 맘대로 찍으세요.”의 환상이 현실이 되자 다른 쪽에서 태클이 들어오더라고요.  아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희귀병에 고생하던 둘째 아이가 그랬어요.  아버지 정이 그리워서 그런지 아이는 이쁜  가수 누나는 무시하고는 저나 남자 스탭들한테 더 매달렸습니다. 촬영하는 카메라 감독 품에 안기고 내 무릎에 매달리고 조명감독한테 달라붙고, 조연출은 연신 아이를 떼내고, 도무지 촬영이 진행이 안 될 지경이었죠. 그러면서 가수에게 “저 아줌마 집에 가라 그래.”라고 부르짖는데 아주 대책이 없더군요.  “누.... 누나야 임마 아줌마 아냐.”

아마도 가수 데뷔 이후 그 누구로부터도 이런 대접을 받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는 퍽 태연했습니다.  아이가 좋아한다는 조립 로봇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녀는 똘망똘망 눈동자를 빛내며 아이에게 다가섰지요.  또 한 번 “아줌마 가!” 소리가 날아오자 아줌마(?)는 거침없이 받아쳤습니다.  그리고 유쾌한 긴장 속의 핑퐁 게임.  “아니 이 아저씨가 왜 이래.”  “내가 열 살인데 왜 아저씨야.”  “나는 결혼도 안했는데 왜 아줌마냐.”  “결혼 안 해도 늙으면 아줌마야.” (으악) “열 살이라도 못생기면 아저씨야.” “내가 왜 못생겼어. 자기가 더 못생겼으면서.” “누나 싫어하니 못생겼지. 좋아하면 잘생겨질 거 같아. 나는 기형이 이뻐하니까 얼굴도 이쁘지.”  

드디어 아이가 키득거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톡톡 받아치면서 자기 눈 앞을 떠나지 않는 ‘아줌마’와 말문을 트기도 했구요.  촬영한 지 세 시간 정도가 지나서였을 겁니다.  보통 같으면 장사 끝내고 좌판 걷을 준비를 할 수도 있었을 시간이었지요.  그 시간 내내 가수는 영 도와주질 않는 어린 아이 앞을 떠나지 않았었어요.  아줌마 집에 가 소리 들어가며, 못생긴 얼굴 타박당해 가면서, 동요도 부르고 어린 아이 춤도 추고 배꼽 인사도 하며 아이를 얼러 가면서 말입니다.  짜증내는 빛 하나 없이 말입니다.


롯데월드에 간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모든 놀이기구에 달라붙었습니다.  촬영은 이만하면 됐으니 애들에게 집에 가자고 하라고 사인을 보냈을 때, 가수는 난처한 듯이 저를 바라봤습니다. “애들이 이거하고 저거는 꼭 타고 싶다는데, 그것만 타고 가죠?” ‘이거’와 ‘저거’는 시간이 갈수록 불어서 나중에는 카메라 감독은 카메라 끄고 커피 마시고 가수와 아이들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놀이기구를 탔지요.  더 이상은 안된다고 내가 기형이에게 정색을 하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롯데월드의 모든 놀이기구를 섭렵할 기세였습니다.  

그날 촬영 큐시트에는 색다른 설정 하나 적혀 있었습니다.  모처럼의 외출을 다녀온 형제가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한다는 거였지요.  아이들도 그러마고 했고 저는 가수에게 이러저러하니 꽃집에 함께 가 달라고 했습니다.  꽃집에 간 아이들이 무슨 꽃을 고를지 몰라 우물쭈물하는데 역시 가수 누나가 적절한 리드를 해 줬습니다.  “여자한테 남자가 주는 꽃은 장미가 일단 기본이야.”라고 했더니 기형이가 장미를 뭉텅이로 가지고 왔고 그 형은 장미 옆의 백합이 이쁘다고 챙겨 왔어요.  그때 가수 누나가 또 이런 훈수를 두었습니다.  “얘들아 꽃에는 다 꽃말이 있거든.  꽃에는 뜻이 있어요.  고맙다, 감사하다는 꽃말을 가진 꽃을 고르는 게 어떨까.” 그 꽃의 이름은 잘 기억 못하겠어요.  다알리아였던가. 하지만 하여간 꽃집 내의 그 꽃은 이내 동이 났습니다.  


이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보며 지켜보고 있었지만 제 속은 그렇게 여유롭진 않았어요.  없는 진행비에 형식적인 꽃다발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꽃다발이 아니라 숫제 화환을 만들 기세잖아요.  그렇다고 저 분위기를 깨고 “이건 너무 많으니 줄여!”라고 나설 만한 배짱은 죽어도 없고 말이죠. 진행비를 탈탈 털어 봐야 근사치에 도달하지도 못할 근사한 꽃다발이 완성되었을 때 눈물을 감추고 제 개인 카드를 들이밀었는데, 매우 기이한 소리가 들렸어요.  

“그걸 왜 감독님이 내요?”  

고개 들어 쳐다보니 가수가 배춧잎 몇 장을 손에 들고 서 있었어요.  왜 당신이 내느냐는 질문은 의아함의 표현이 아니라 항의의 뜻이었습니다.  당연히 촬영 중 소품을 사는 것인데 제가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더듬더듬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거든요.  “이건 소품이 아니라 선물이잖아요.  아이들이 엄마에게 처음 드리는 꽃다발이잖아요.  이건 제가 사주고 싶은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좀 불려 말하면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배도 알다시피 산하가 짠돌이 기질이 있긴 하지만, 그 돈 굳었다고 좋아할 만큼 메마르진 않습니다.  그녀가 이 자리에 온 것이 방송을 위해서, 누가 말한 대로 새 앨범이 나와서 몸 바쳐 홍보해야 하니까 아이들과 함께 있은 것이 아님을 그제야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소품’이 아닌 ‘선물’이라는 말 속에 담긴, 홀로 아이들을 기르느라 손과 발, 그리고 마음에 굳은 살 배겨 버린 엄마에게도 뜻밖의 기쁨을 전하고픈 그녀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정말로 그녀는 그 가족과 ‘함께’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로부터 7년쯤이 흘러버린 오늘 저는 그녀의 이름을 다시 접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박혜경.  그녀는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인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뜸으로서 고아가 되어 버린 두 아이들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우울증으로 스스로 세상과 절연했던 엄마를 보내야 했고,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답답함에 몸부림치다 심장이 멈춰 버린 아빠와도 이별해야 하는 아이들의 누나가 되어 주겠다고 합니다.   “나간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고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지.” 하고 앉았다는 옛 동료들도 묵묵부답이고, 신차 발표회에 휘황한 회사도 말이 없는 판에, 그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겠다고 나선 박혜경씨의 이름 석 자에 7년 전의 과거가 갓 개봉한 영화처럼 펼쳐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이건 소품이 아니라 선물이잖아요.”라고 야무지게 말하던 그녀의 따뜻함을 소장하고 있었기에 말이에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을 과장법이라고 여기는 이도 있지만,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경우 이 말이 오히려 현실에 부합함을 증명합니다.  이미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고 그 죽음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나락의 물길이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며 그를 흐르는 물살의 세기가 강해져 온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휩쓸리는 사람은 날로 늘어만 가고 있지요.

그 흉측한 물줄기에 맞설 수 있는 건 결국 ‘연대’일 겁니다. 비슷한 처지의, 그리고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연대.  하지만 이 말도 왠지 뻘건 조끼 냄새 나서 싫다면 ‘함께 나누는 마음’이라고 해 두지요.  “살 사람은 살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채울수록 죽을 사람이 늘어나는 아이러니 속에서 가수 박혜경씨는 자신이 가진 것의 아주 작은 일부나마, 그리고 마음으로나마 충실하게 누구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가르쳐 준 분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내가 그녀를 처음이나 마지막으로 만난 날, 그녀의 만류로 내지 못한 꽃다발 값을 그녀의 새로운 동생들을 위해 부치는 것이겠지요.  선배는 벌써 하셨을 수도 있지만 혹여 필요하실 수도 있어 계좌 적어 둡니다.  여의치 않으시면 다음 기회로 미루셔도 됩니다. 우리의 도움이, 우리의 마음이 필요한 사례는 앞으로도 연속부절로 생겨날 게 뻔하니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세상에 남은 두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하여, 아프게 세상 떠난 부모님 보란 듯이 잘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3020109231621  농협 이자영

  
P.S. 해외 출장 가신다고요.  해외운 없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그래도 비행기도 타 보시고 유럽이라니 더욱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잘 다녀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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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희 2011.03.03 15:52 (*.152.151.5)

    제 기억이 맞다면,

    우울증으로 자살했던, 쌍용차 무급휴직자인 노조간부 임00님의 아내는

    고대안산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었어요. 그 당시 가족들이 진료기록을 볼 수 없겠냐며 찾아왔었거든요.

    그리고 무급휴직중이었던 노조간부 임00님은 잠자던 채로 고인이 되셨다고 해요..

    그리고 중학생, 고등학생의 아이들 둘만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졌다고 합니다.

     

    가수 박혜경씨가 트위터에 이 아이들의 부모를 대신해주겠다는 글을 남겼고,

    여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 정성이라도 함께 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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