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돈보다생명

[비정규직 24시] 광화문 광장에서 외롭고 슬픈 사람들

by 노안부장 posted Nov 12,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는 즐겁지 않았다"
[비정규직 24시] 광화문 광장에서 외롭고 슬픈 사람들

누군들 그렇지 않았을까. 봄부터 여름까지 광화문에 서면 우리가 얼마나 싱싱하게 저항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모르는 얼굴들이 정겨웠다. 입시학원과 서열화에 찌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10대들의 거침없는 발언은 어찌나 상쾌하던지. 어깨도 안아주고 싶고 손도 잡아보고 싶었다.

유모차를 끌고나온 어머니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줌마의 힘으로 경찰의 폭력을 무력화시켰고 청와대로 가는 길이 막혀 밤새도록 싸우는 새벽이면 경찰이 퍼부어대는 물대포에 “더운 물”을 달라고 외치며 군중들은 권력의 폭력을 조롱했다.

도대체 청와대에 가서 뭘하려고 이렇게 아우성인 걸까? 옆에선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일단 명박이 보고 나오라고 해서, 얘길 해봐야지.”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물어보냐고 큰소리치는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상상을 해보면 우리가 모두 청와대 안뜰에 가서 이명박 대통령더러 나오라고 하고, 잠옷을 입고 나온 이명박 대통령이 졸린 눈을 비비면 “광우병 걸린 미친소는 너나 먹어!” 이렇게 말하고 나온다는 건가?

   
  ▲ 촛불을 든 소녀들 (사진=손기영 기자)
 

그런데 나는 왜 즐겁지 않은가? 

그렇게 온몸의 에너지를 자유롭고 발랄하게 표현하는 군중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마땅히 춤추며 기꺼이 그 군중의 한 명이 되어야 할 나는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발랄하지 않았고, 나는 즐겁지도 않았다.

광화문 그 뜨거운 광장에서 발랄한 군중들이 너무너무 부러워서, 슬펐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초라한 농성장이 머릿 속에서 맴돌았고, 너무 많은 사업장에서 올라간 크레인과 철탑과 굴뚝의 외로움이 몸에서 떠나질 않았다.

단식을 하는 동지에게 밥을 먹으라고, 우리가 싸움에서 패했으니 그만하자고 말할 수가 없어 입 다물고 가슴을 치는 억울함이 돌덩이처럼 징징 울었다. 비정규직 싸움을 하는 우리는 왜 외로울까? 그리고 심지어 불쌍할까?

광화문 촛불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이후 마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좌파에게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허기지다. 그동안 상상력이 없어서 비정규직 투쟁이 고립되어 외로웠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동안 가장 좌파적인 상상력으로 투쟁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발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는 것이다.

'좌파적 상상력' 이전에 우리가 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면 주는대로 받고, 해고되면 찍소리 없이 나가라고,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숨죽여 살아도 아무 때나 해고되고,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싸워도 아무 때나 해고되어 길고 지루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반복해서 살아낸 후에도 여전히 길거리 천막에서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밖에 살 수 없어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물론 발랄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무엇인지 알지못했고 비정규보호법이 어떻게 현실에서 비정규직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았던 가난한 사람들이 해고될 위협에 처해 할 수 없이 만든 노동조합. 하루이틀은 아니지만 한 달 두 달이면 싸움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가난한 노동자들이, 설마 쉽게 끝나지 않아도 내년 여름까지 싸우기야 할까 상상도 하지 못했던 끈질긴 투쟁을 서로의 야윈 어깨에 기대어 지난 몇 년처럼 오늘도 싸운다.

우리는 사람도 아니었구나... 그렇지만 상상한다

어째서 경찰은 거짓말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은 우리에게 그토록 성내며 위협하는지, 어째서 법은 늘 회사의 편인지, 알고 보니 우리는 사람도 아니었구나!

그렇지만 상상한다. 어제까지 단식하던 동지가 작업복을 입고 라인에서 일하면 그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경쾌할지 상상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 자동차를 만드는 모든 공장의 노동자들이 어깨걸고 싸우는 것을 상상하고 배 만드는 노동자들, 전기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화물연대 트럭을 타고 시민들과 함께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로 질주하는 상상을 한다. 청와대 안뜰에 모여 앉아 이명박을 세워놓고 술을 마신들 어떠랴!

그런 날은 없다고 하겠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유연화된 노동 위에서 더많은 이익을 얻는 것들이 술잔을 들며, 계란으로는 절대 바위를 깰 수 없다고 잘난 척하며 코웃음치겠지. 그러나 우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배고픈 비정규직 투쟁은 전복의 상상력이다. 우리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고 싶다. 발랄하게.

                                                  * * *

앞으로 <레디앙>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현장의 소식을 전해줄 권수정씨는 강원도 정선 산골 광산촌에서 자랐으며, 봉제공장과 과자공장에서 라인을 타며 광부였던 아버지의 노동을 이해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노동자다. 

'비정규직 24시'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하는 권수정씨는 2003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사내하청지회 설립 이후 해고됐으며 현재 비정규직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편집자 주>

2008년 11월 11일 (화) 10:14:18 권수정 /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webmaster@redian.org
?

  1. 미리 ‘철도파업 불법’ 규정…‘MB식 법치’ 시험대로 삼은듯

    미리 ‘철도파업 불법’ 규정…‘MB식 법치’ 시험대로 삼은듯 입력: 2008년 11월 19일 18:17:51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메트로와 코레일 노조의 파업 방침에 대해 연일 강력 경고를 하고 있다. 미리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강경 대응을 공언...
    Date2008.11.19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369
    Read More
  2. No Image

    EU '전공의 근로기준’, 국내에도 영향 미치나

    EU '전공의 근로기준’, 국내에도 영향 미치나 내년부터 주당 48시간으로 제한…병원경영硏 "OECD국가에 영향"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유럽연합(EU)에서 준비 중인 방안이 국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연구팀(이용균, ...
    Date2008.11.18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419
    Read More
  3. No Image

    강남성모병원 농성장 또다시 ‘폭력침탈’

    강남성모병원 농성장 또다시 ‘폭력침탈’ 집행관이 구사대·용역회사 직원 동원해 불과 20여 분 만에 천막과 로비농성장 강제철거...병원측 손 일방적으로 들어준 법원 가처분결정 이후 이미 예고됐던 침탈 선전국 조회수: 22 / 추천: 0 강남성모병원 비정규노동...
    Date2008.11.18 Category지부소식 By노안부장 Views870
    Read More
  4. No Image

    워킹푸어(일하는 빈곤층)

    Date2008.11.17 Category영상뉴스 By관리자 Views1781
    Read More
  5. No Image

    대형병원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 ."중소병원 3곳 중 1곳 조만간 문 닫아"

    "중소병원 3곳 중 1곳 조만간 문 닫아" 앨리오앤컴퍼니 박개성 대표 "37% 도산 예고" 전망 최근 가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대형병원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으로 인해 중소병원 37%가 조만간 문을 닫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병원 전문 컨설팅업체 앨리오앤컴퍼...
    Date2008.11.14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408
    Read More
  6. “병원측은 비정규직 문제 외면 말고 즉각 해결에 나서라”

    “병원측은 비정규직 문제 외면 말고 즉각 해결에 나서라” 비정규직 정규직화! 고용안정 쟁취! 가처분결정 규탄!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보건의료노조 결의대회 개최 선전국 조회수: 28 / 추천: 0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이 11월 13일 현...
    Date2008.11.14 Category지부소식 By노안부장 Views741
    Read More
  7. No Image

    [기고] 오바마의 의료개혁과 이명박의 민영화

    [기고] 오바마의 의료개혁과 이명박의 민영화 / 우석균 오바마는 선거 직전 연설에서 경제위기와 전쟁 다음으로 주택과 보건의료 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보건의료 체계가 보험회사와 제약회사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
    Date2008.11.13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285
    Read More
  8. No Image

    Chief 앞둔 외과 3년차 전공의 J씨 고민

    Chief 앞둔 외과 3년차 전공의 J씨 고민 "중도 포기는 늘고 지원자는 줄어-사명감만 앞세우기에는 현실이…" "올해도 1년차 외과 후배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고대의대 외과학교실 전공의 3년차 J씨. 표정이 썩 밝지 않다. 그는 12일 막을 올린 제6...
    Date2008.11.13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752
    Read More
  9. No Image

    [비정규직 24시] 광화문 광장에서 외롭고 슬픈 사람들

    "나는 즐겁지 않았다" [비정규직 24시] 광화문 광장에서 외롭고 슬픈 사람들 누군들 그렇지 않았을까. 봄부터 여름까지 광화문에 서면 우리가 얼마나 싱싱하게 저항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모르는 얼굴들이 정겨웠다. 입시학원과 서열화에 찌들어 있을 것이라...
    Date2008.11.12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566
    Read More
  10. No Image

    [언론보도] 강남성모병원 '불법파견' 인정

    [언론보도] 강남성모병원 '불법파견' 인정 서울중앙지법 "파견금지업무에 파견직사용…고용의무 적용" 교육선전실 조회수: 73 / 추천: 0 파견직 간호보조원 28명을 대량해고 해 석달째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강남성모병원에 대해 법원이 병원측의 불법파견을 인...
    Date2008.11.12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391
    Read More
  11. No Image

    전기 4.5%..가스 7.3% 인상

    전기·가스요금 인상 내일 발표 전기 4.5%..가스 7.3% 인상 지식경제부는 전기요금과 도시가스요금을 이번주부터 인상하는 방안을 11일 발표하기로 했다. 전기요금은 주택용과 자영업, 중소기업, 농업 등 4개 요금이 동결되지만 도시가스요금은 가정용은 5%대,...
    Date2008.11.10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287
    Read More
  12. No Image

    케인즈 좌파, 케인즈 우파, 그리고 명박파

    케인즈 좌파, 케인즈 우파, 그리고 명박파 [우석훈 칼럼] "케인즈ㆍ신자유주의 나쁜 점 모으면…명박파" 2008-11-10 오전 10:08:06 케인즈라는 경제학자는 '거대 이론(Grand Theory)'이라는 관점에서는 마지막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그 뒤에서...
    Date2008.11.10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454
    Read More
  13. No Image

    가계대출금의 약 70%, 부동산 투자에 쓰였다

    가계대출금의 약 70%, 부동산 투자에 쓰였다 KDI "고소득층일수록 비중 높아…부동산 가격 급락하면 큰 위험" 2008-11-10 오후 2:59:18 지난 2000년 이후 지속된 자산버블기에 가계소득의 70% 정도가 부동산 투자에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 상위계층...
    Date2008.11.10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410
    Read More
  14. 철도노조, 오는 20일 총파업 예고

    철도노조, 오는 20일 총파업 예고 지구별 공동투쟁 돌입, “국민철도 사수와 철도 공공성 확대 위해”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 2008년11월10일 17시37분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가 사측과 진행 중인 단체교섭에서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할 시 오는...
    Date2008.11.10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373
    Read More
  15. No Image

    노동부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필요"

    노동부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필요" "법개정 긴박하게 가져가야" 노동부 박화진 차별개선과장은 10일 간담회에서 "(기간제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연장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일 간담회에서...
    Date2008.11.10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268
    Read More
  16. No Image

    강남성모병원, 구조조정 계획 밝혀…조합원, “전산화되도 업무 사라질 수 없어”

    9월에 들어온 파견노동자도 곧 해고? 강남성모병원, 구조조정 계획 밝혀…조합원, “전산화되도 업무 사라질 수 없어” 지난 9월 30일 간호보조업무를 맡고 있는 파견직노동자 28명을 계약해지한 강남성모병원(병원장 황태곤)이 이들을 상대로 지난 11월 4일 법...
    Date2008.11.10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655
    Read More
  17. 조합원에게 드리는 글 - 임순옥 지부장

    조합원에게 드리는 글 어느덧 달력이 두 장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온통 노랗고 빨갛게 물들었던 나무들도 저마다 잎을 떨구는 계절입니다. 여느 해 같으면 진즉에 현장교섭이 마무리 되어 고구마도 캐러가고 목장에 소젖도 짜러가고, 노동조합 호프데이도 준...
    Date2008.11.10 Category지부소식 By관리자 Views1069
    Read More
  18. No Image

    인천서 첫 차별시정 신청..조정으로 마무리

    인천서 첫 차별시정 신청..조정으로 마무리 인천지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첫 번째 차별시정 신청이 사용자측의 금전 보상으로 조정이 마무리됐다. 4일 인천지역노동조합에 따르면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3일 차별시정조정위원회를 열고 계양구청에...
    Date2008.11.07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259
    Read More
  19. No Image

    [칼럼]미국인들은 오바마에게 제국의 꿈을 본 것은 아닐까?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다 [칼럼]미국인들은 오바마에게 제국의 꿈을 본 것은 아닐까? 배성인(편집위원) / 2008년11월07일 0시32분 이변은 없었다. 미국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마침내 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에 당선됐다. 매케인은 일찌감치 패배를 ...
    Date2008.11.07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495
    Read More
  20. No Image

    "간호사 이직률 60~70% 달하는 병원이 문제"

    "간호사 이직률 60~70% 달하는 병원이 문제" 병원간호사회 실태조사 결과, 평균 이직률 23% "간호사 면허 갱신제도·야간간호 가산료 도입 등 필요"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평균 이직률이 2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김명애 간호부장은 ...
    Date2008.11.07 Category돈보다생명 By노안부장 Views99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28 129 130 131 132 133 134 135 136 137 ... 155 Next
/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