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한민국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고, 국회 다수당도 바뀌었다. 10년 만에 권력의 대폭 교체가 이뤄졌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새로운 선택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의 양극화, 빈곤화의 고단함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다. 그러나 2008년 한 해 동안 국민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뉴스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프로메테우스>가 10대 뉴스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올해는 최근 몇 년 보다도 더 기억하기에 즐거운 뉴스가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경제위기가 시작됐다고 말하는 2008년에 좋은 일이 많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 10년 동안 고단한 삶을 인내했던 사람들에게 2008년이 지난 10년보다 더 우울한 시대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결론은 안타깝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10대 뉴스를 선정하고 기사화하면서 기사의 첫 부분을 이렇게 어둡고 축축하게 하는 것도 독자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대신, 2009년에는 올해보다 좋은 뉴스가 많기를 독자들과 한 마음으로 기다리고자 한다. 2009년은 소의 해다. 소는 12지신 중에 ‘부유함’을 상징한다.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그리고 기대를 부풀리면 실망도 그만큼 큰 법이지만, 그래도 2009년에는 국민들의 주머니도, 마음도 조금 더 넉넉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 촛불

2008년에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뉴스는 역시 5월부터 한 여름까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이다. 촛불은 또한 2008년 한 해 동안,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국민들이 직접 참여한 축제였다. ‘촛불’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 촛불소녀 등 2008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억 속 공통분모를 쏟아내는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 60만 시민이 모인 6월 10일 촛불대행진. 사진의 오른쪽 위가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광화문 사거리이다. 촛불의 물결은 덕수궁과 서울시청을 지나 남대문 부근까지 이어졌다. ⓒ 프로메테우스 자료사진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촛불항쟁까지 일어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권리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숙고했다. 당연하게도 민주공화국에서 권리의 주체는 국민이기 때문이리라.

<프로메테우스>가 2008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보도한 것도 ‘촛불’이다. 사실 ‘촛불’을 다룬 뉴스가 다른 기사에 비해 그 양이 압도적이다. 촛불이 가장 뜨거운 그 순간, <프로메테우스>도 모든 취재장비를 챙겨들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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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제위기

촛불광장에서도 이야기됐던 9월 미국발 금융위기는 결국 현실이 됐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상품인 금융 파생상품을 타고 전 세계 곳곳으로 흘러들었고, 또한 그 내용에 있어서도 유동성 위기, 실물경제 위기로 계속 확산됐다.

2008년 상반기가 촛불의 시대였다면 2008년 하반기는 경제위기의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는 2009년 12월에도 올해의 10대 뉴스 주제어로 선택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11년 전의 IMF 외환위기와 달리 현재의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경제위기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전 세계를 상대로 계속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모색을 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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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명박 정부 출범

2월 25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연간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 강국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747은 없었다.

대신 집권 초부터 인사파동, 종교편향, 고소영, 강부자 내각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정치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의원을 통해야만 일이 된다는 ‘만사형통’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급기야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시작된 87년 이후 최대 규모인 촛불시위가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첫 해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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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8 총선 보수 압승

2007년 12월 19일의 대선 결과가 발표되면서 4개월 이후에 치르게 될 총선 결과 또한 예고됐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153석을 획득하고,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도 각각 18석과 14석을 획득했다. 25석의 무소속 중에도 보수 성향의 당선자가 많았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것에 이어 18대 총선에서 보수가 압승하면서 10년 만에 정권교체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국민들이 보여 준 모습은 무관심이었다. 18대 총선은 46.0%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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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숭례문 화재

지난 2월, 600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국보1호 숭례문의 방화 소실이라는 갑작스러운 비보가 대한민국 전체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숭례문의 화재가 사회에 불만을 품은 한 남자의 충동적인 방화였다는 것에서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화재 원인 조사 과정에서 국보1호인 숭례문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허술했고 안전관리시스템도 전무했다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숭례문 화재 이후 화재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한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복원작업은 2012년 끝날 것으로 보이나, 원래 숭례문이 아닌 것을 어떤 등급의 문화재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의 여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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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안재환, 최진실 등 연예인 잇단 자살

지난 9월, 배우 안재환이 40억 원에 달하는 사채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촛불집회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중의 실언으로 잠시 프로그램을 쉬어야 했던 인기 개그우먼 정선희는 ‘망언 논란’이 대충 수습되는 국면에서 남편의 자살이라는 슬픈 일을 겪어야 했다.

10월에는 안재환 사채 문제에 연루됐다는 네티즌들이 퍼뜨린 근거 없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던 국민배우 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해자는 없으나 일방적인 피해자만 있는 사이버 폭력의 결과였다.

인기 연예인들의 잇따른 죽음은 경제위기와 맞물려 2008년 한국사회의 우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했다. 최진실 자살 이후 트랜스젠더 장채원과 모델 김지후, 엠스트리트의 이서현 등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베르테르 효과까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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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멜라민 함유 식품 파동, 미국산 쇠고기

2008년에는 유난히 물 건너오는 것들에 대한 공포가 심했다. 물론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계속되면서 예정된 일이기도 했다.

2008년 한 해 동안 가장 극심한 공포를 자아낸 물 건너 온 것은 광우병 쇠고기와 멜라민 함유 식품이다.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을 쿨하게 끝낸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주장했지만,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6월, 캐나다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는 일도 있었다.

아기들 분유에서까지 검출돼 세상을 놀라게 한 9월의 멜라민 파동은 결국은 유전자 변형이라는 인간의 욕심이 부른 재앙-광우병 쇠고기와 함께 식품 대량생산 체제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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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언론 장악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언론 장악을 위한 정치권의 개입이 신속하고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3월에 최시중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됐고, 이후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계 낙하산 인사와 해임 등이 무대포로 진행됐다.

KBS의 정연주 전 사장이 해임됐고 새로운 사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고, 이병순 사장 선임을 둘러싼 갈등의 과정에서 지난 8월 KBS에 경찰이 난입하는 일도 벌어졌다. 10월에는 낙하산 인사인 구본홍 사장 선임에 반대하는 YTN 노조원들이 해고 등의 징계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YTN 노조원들은 무기한 단식농성으로 이에 맞섰다.

언론계 낙하산 인사는 이후 KBO 총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자리 등에 대한 낙하산 인사로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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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

2008년 내내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7월 11일, 금강산에서 남측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긴장 국면이던 남북 관계가 더 급속도로 냉각됐다. 이 일로 금강산 관광이 잠정 중단됐다.

이후 남한의 보수 시민단체인 자유북한연합이 살포한 대북 삐라를 북한이 문제 삼으면서, 북한은 개성공단 남측 상주인력을 크게 줄이는 등의 ‘12ㆍ1 조치’를 단행했다. 이로써 지난 10년간의 남북 관계 개선의 성과들은 급속하게 축소됐으며 개성공단에 진출했던 중소기업들도 경제위기에 설상가상의 어려움을 떠안게 됐다. 급기야 6자회담까지 무산됐고,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발언력은 상당히 감소했다.

- 금강산 관광객 총에 맞아 숨져

10. 일제고사 부활과 전교조 교사 파면ㆍ해임

2008년이 끝나가는 12월 10일, 서울시교육청이 일제고사를 치르던 날, 일제고사를 보는 대신 학생들과 체험학습을 갔다는 이유로 전교조 소속 교사 7명을 파면, 해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학교 자율화를 통해 사교육이 지금보다 더 번성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고 일제고사가 부활됐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되면서 89년 전교조 해직사태를 연상시키는 전교조 교사 파면ㆍ해임이 있었다.

- 거원초 아이들, “일제고사 거부, 우리가 선택했습니다”

△ 거원초등학교 앞에서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학부모들. ⓒ 프로메테우스 자료사진

2008년에는 이밖에도 △정치인, 공무원, 강남 부자들의 쌀 직불금 부당 수령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냉동 창고 화재사건 △안양 어린이 납치 살해 사건 등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만드는 뉴스들이 많았다. 물론 2년 반이 넘게 복직을 위해 싸워온 KTX여승무원들에 대한 법원의 복직 판결과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세계 7위를 기록해 국민들을 즐겁게 한 베이징 올림픽도 있었다. 하지만 2008년은 전반적으로 우울했다.

그러고 보면 올해 정치권에서 나온 많은 인상적인 말 중에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한국이 올림픽에서 7등을 했으므로 747 중에 마지막 7이 달성됐다”는 말을 꼽을 만하다. 10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대한민국 보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올림픽에서 7등 한 것으로 747로부터 갈수록 멀어지는 경제위기의 시대를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